우리가 꿈꾸는 정치는 우리 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최연혁 소장 인터뷰 -
2017. 7. 11
정리 : 과천시의회 제갈임주 의원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Scandinavia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SCIPS)는 한국과 북유럽 간에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문제해결의 경험을 공유하게 하여 양 진영의 지속적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9년 연구재단으로 설립되었다. 교육, 연구, 출판 및 국제회의 등을 수행하고 있다. -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홈페이지 (http://www.scips.se) -
30년간 스웨덴에 살면서 북유럽 복지국가의 정치를 연구한 최연혁 교수는 린네대학 교수이자 스칸디나비아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강의, 저술, 인터뷰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국내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최 교수는 청년들의 정치교육에 특별한 애정과 노력을 쏟고 있다. 필자는 이번 연수 최대의 과제를 최 교수와의 인터뷰로 정했다. 한국 사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스웨덴 정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치의 의미와 정치인의 역할에 대해 새롭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족한 필력으로나마 그와 나눈 이야기를 남긴다.
‘민주주의 발전의 필수요소는 무엇일까?’란 질문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최 교수는 요즘 현대 민주주의의 뿌리에 대해 연구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헌정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는 영국, 미국, 스웨덴 세 나라에 불과하다. 이 세 나라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들여다보니 답은 ‘리더십(leadership)'이었다. 의회와 정부를 운영하는 리더십, 즉 핵심은‘정당’에 있었다. 정치를 혼자서 하기란 불가능하다.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세계 강대국들의 몰락 뒤에는 언제나 절대 권력을 견제할 강한 야당의 부재(不在)가 있었다. 독점된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의회 내 두 목소리를 내는 정당은 민주주의가 역동성 있게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의회는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렇게 보자면 스웨덴 사민당은 90년 가까이 장기집권 한 정당이 아닌가?
사민당(사회민주당)이 오래 집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지배구조는 매우 허약했다. 안정적인 정치를 펼치려면 최소한 의회 의석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데 사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경우는 단 두 번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의석 수 50% 미만의 단독 내각이었고 연정과 정책 공조를 통해 개혁해 왔다. 완전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은 아니었다.
스웨덴 정치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위로부터의 개혁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영․미․스웨덴의 정치 지도자는 모두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이들이었다. 1800년대 국민의 학교 진학률은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정치인이 되는 사람은 1~2퍼센트에 불과했다. 역사는 깨어있는 정치인들의 투쟁에 의해 진보해 왔다. 영국의 존 브라이트는 열여섯 번에 걸쳐 비밀투표법안을 냈다. 처음 법안을 제출했을 때 존은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떳떳하게 투표하는 것을 깨끗한 정치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 그러나 공개투표로는 뇌물이 오가는 정치를 막을 수도, 소신대로 투표하는 약자들을 보호할 수도 없었다. 존 브라이트는 당대의 관행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1872년 영국의 비밀투표법은 통과되었다. 이렇듯 교육받은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함으로써 사회개혁은 이루어졌다.
정치를 너무 엘리트 중심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시민의 깨인 의식과 힘도 개혁을 추동하는 중요한 힘이 되지 않나?
당연하다. 시민의 힘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축적된 시민의 힘은 한 번에 개혁을 이루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시민사회가 잘 작동되는 나라의 대표적인 사례 역시 북유럽 국가를 들 수 있다. 덴마크는 인구가 5백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이곳에서 폴케스콜레(Folkeskole, 공립기초학교) 운동이 시작되었다. 의무교육과 함께 시민운동 발전에 기여한 또 하나의 바탕은 개신교였다. 1780년대 왕의 칙령에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아버지의 역할은 자식이 성경을 읽고 그 다음 주에 1절을 외우게 하는 것이다.’그 시대 아버지는 자녀에게 글을 가르쳤고, 목사는 이를 점검하는 역할을 하였다. 글의 문화를 가진 기독교의 영향으로 북유럽 국민들은 일찍이 글을 깨우치게 되었다. 글은 사고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고, 이를 통한 국민의 깨인 의식은 좋은 정치의 토양이 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가 튼튼해지려면 이 외에 사회의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시민들이 저녁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노동시장의 여건, 기업문화, 놀이문화 모두와 연관된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보다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이웃과 나누는 토론을 더 즐길 때 시민들의 정치참여도 높아질 것이다.
토론과 합의의 정치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해 다양한 정당으로 구성된 의회를 만든다면 토론과 협의가 더 원활해지지 않을까?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아무리 제도가 바뀐다 해도 사람이 따라가 주지 않으면 정치문화도 변하기 어렵다. 토론의 기본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인데 한국인들은 이 점이 매우 부족하다. 주요원인은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 속에 심화된 빈부격차에 있다고 본다. 사람들의 소외와 변화에 대한 갈증을 정치권이 해소하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민주주의의 소양과 평등의식은 아직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 우리 의식의 기원을 찾기 위해 그 이전의 역사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남북한 냉전 시대를 거슬러 6.25와 일제시대, 그 이전 조선 시대에 있었던 반상(班常)의 계급구조는 지금까지도 남아 우리 의식을 지배한다. 저마다 특권을 향유하려는 욕망의 이면은 다름 아닌 열등의식이다. 내가 당한 만큼 ‘갑’이 되려 한다. “주인 나오라고 해!”하며 큰 소리 칠 수 있는 소비자의 심리도 같은 맥락이다. 존중과 관용이 가능하려면 불평등을 없애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경제발전과 분배의 정의를 이루는 것, 이 두 가지가 정치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지점을 말씀하셨다. 또한, 사람과 문화가 바뀌려면 교육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정치교육의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정치전문가 과정이라고 선거운동과 기술을 가르치곤 하는데 그보다는 미래비전, 국가, 사회적 갈등과 시민과의 협치 등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의원이 되는 방법은 부수적인 일이다. 스웨덴 교육대학의 교재인 사회교육지침서 1절에는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나눔을 느끼게끔 도와주는 것이 사회교육의 시발점’이라고 나와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기업가와 노동자, 사회적 약자 모두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와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교육의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스웨덴 청년들은 정당에 가입하면 전직 총리부터 그 당 출신의 장관, 현직 의원,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10년 내에 다 만날 수 있다. 정당의 정치 선배들은 어느 지방이든 다 찾아가 예비 정치인이 될 당원들을 만난다. 이것이 바로 정당의 역할이고 정치교육이다. 우리나라에는 정치인 충원구조와 정치교육이 아직 부족하다. 좋은 정책을 만들어 사회를 바꿔보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젊은이들이 정치의 주체로 나서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정당의 중요한 역할이다. 스웨덴 총리를 23년간 역임한 에를란데르는 퇴임 후 사민당 청년교육기관인 봄메쉬빅(Bommersvik) 근처에 살면서 매년 그를 찾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의회와 국가의 운영, 정책을 만드는 법, 정치 경험과 현실의 분석을 들으며 사람들은 배운다. 나와 사회, 국가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정치는 지방의원부터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지방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활정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국회부터 입성하는 이들을 스웨덴 사람들은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자기 명예욕을 위한 것으로 치부한다. 룬드(Lund)지역 의원이었던 에를란데르 총리를 비롯해 대부분의 총리들은 지방의원 출신이었다. 또한, 교육을 할 때에는 긴 안목을 가지고 근본부터 바꿀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한 예로, 핀란드가 성평등 국가를 만들기로 계획했을 때 가장 먼저 교육한 대상은 학생들이 아니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그 교사를 가르치는 대학 교수들부터 성평등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 이후 교사 재교육이 이뤄졌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배웠다.
변화는 단숨에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구가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50-100년 전 작품이다. 그러니 긴 호흡으로 나아가야 한다.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 뒤에는 1789년 영국 윌리엄 윌버포스의 연설이 있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노예무역폐지 법안을 제출(1787)한 이후 150여 차례 의회 연설을 하고 두 차례 암살의 위기를 넘겼다. 그의 노력이 마침내 동료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노예무역금지 법안이 통과(1807)되었고 사흘 후 그는 눈을 감았다. 1928년 페르 알빈 한손 스웨덴 사민당 당수의‘국민의집’ 연설도 40년대 시작되어 30년 뒤에야 실현되었다. 앞서 말한 비밀투표 쟁취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꿈꾸는 정치는 우리 대에 이뤄지지 않는다. 이것이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미래 세대 정치인을 키우는 일에 우리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
그러나 오늘의 스웨덴은 유감스럽게도 좋은 집이 못 된다. 정치적으로는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사회는 계급적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국가 경제는 소수 특권층에 의해 좌우된다. 스웨덴 사회의 불평등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일부는 궁전 같은 저택에 사는 동안, 일부는 동절기 동안 텃밭에 붙은 초가집에 거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분에 넘치게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빵 한 쪽을 구걸하며 끼니를 해결하고, 고통에 시달리며, 실직 상태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의 스웨덴 사회는 사회 구성원 간의 진정한 ‘평등’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 좋은 ‘국민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 사회적 돌봄 정책과 경제적 균등 정책이 요구된다. 또한 기업 경영에서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는) 정당한 지분이 지불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수단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 1928년 페르 알빈 한손 총리의 ‘국민의집’ 연설문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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