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가?
“너는 우리가 밀어 준 의원이잖아. 그러면 우리를 위해 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의원이 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한 동료가 내게 던진 이 말은 한참동안 내 마음 속 화두가 되었다. 풀뿌리는 어디까지이고,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무엇을 위해 일한다는 마음은 가졌어도 특정한 누구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2015년 어느 여름, 한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과천의 복지기관에서 일해 온 그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해외의료 사회사업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때, 나의 요청으로 이뤄진 만남이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주민을 만나며 성심껏 일했는지 아는 나로서는 그의 평가와 소회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경험한 과천의 사회복지 과제와 일하면서 느낀 애로점 등을 말이다. 떠나는 이에게 받을 생각만 했던 나에게 그는 낡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사회사업 원론서 「복지요결」이었다. 복지를 시혜가 아닌, ‘사람을 사람답게 돕는 일’로 보고 활동의 원칙과 내용을 정리한 지침서였다. 빨간 줄과 형광펜 자국으로 빼곡히 채워진 책을 보자니 일과 사람을 대하는 그의 신실함이 책 속에 그대로 묻어나왔다.
복지요결
당사자를 복지의 주체로 보고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복지요결의 핵심은 풀뿌리 운동, 풀뿌리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자신이 배운 대로 일해 온 그의 활동은 언제나 초심을 일깨우는 자극이었고, 또한 그는 내게 ‘풀뿌리’의 기준이 되었다. 진보나 보수로 나눌 수 없는 수많은 시민들,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우리가 함께 가야 할 풀뿌리가 아닐까? 내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고, 인간의 약함과 악함이 동전 앞뒷면과 같듯이,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사람을 규정하는 일이 무모한 것임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이십대 초반 한겨레신문을 보던 나는 조선일보를 보시는 아버지에게 “그것도 신문이냐?”며 바꿀 것을 권하곤 했다. 그런 나를 향해 아버지는 “네가 언제쯤이면 세상을 흑백으로 나눠 보는 일에서 벗어나겠니?”하고 묻곤 하셨다. 그것이 사십 대 중반의 일이 될 줄은, 더구나 정치가 안겨준 선물이 될 줄은 당시엔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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