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책방은 大地다
대 지
현경 선생님이 오신 날 여우책방에 들어선 나는 잠시 멈칫했다.
휘장을 드리운 무대 앞에서 머리에 화관을 쓰고 나풀나풀한 치마를 날리며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 천상의 여신들이 모인 듯 이 생경한 풍경은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여우와 여신들은 친절했다. 세상에 지쳐 내려갈 때마다 환대와 위로로 맞아주었다. 쉽사리 남을 판단하고 충고하기보다 칭찬과 북돋워주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었다. 그 밝은 에너지의 원천은 천진난만함. 세상을 구하려는 사명감도, 남을 위해 헌신하는 책임감도 아닌, 마음 따라 사는 삶에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쫓아, 할 수 있는 만큼!
그러한 여신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견뎌야 한다. 물에 빠지기 직전인 나르시스를 참고 보는 것 말이다. 남의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내 눈의 티는 더더욱 안 보이는 여신들은 작은 것에 감동하고 스스로 대견해한다.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 타인도 품을 수 있는 건가? 여신들의 탄성과 박수 소리에 힘을 낸 사람들은 가슴 속 잠자는 꿈을 깨워 일으킨다. 그렇게 오늘도 글을 쓰고, 노래를 짓고, 연극을 한다.
생명을 살리는 흙, 어머니의 넓은 품.
여우책방은 대지다.
- 시냇물 -
2018.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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