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과 풀뿌리
2014년 지방선거에서 나는 <과천풀뿌리> 후보로 선거에 나와 당선되었다.
나를 당선시킨 주역은 지역에서 짧게는 수 년, 길게는 10년 이상 활동하며 이웃과의 관계망을 넓혀 온 지역의 여성 활동가들이었다. 당시 그-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대신 새로운 지역단체를 만들어 회원의 직접 투표를 통한 ‘시민공천’을 진행하였고, 두 지역구에서 모두 당선의 결실을 맺었다.
2014년 과천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나는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의 반란’으로 해석한다. 불만의 내용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평소 시민과의 접점이 부족한 정당 활동 또는 정치인에 대한 문제제기였고,
둘째, 선거에서 후보 결정 과정에 시민의견 반영절차가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일상 속 정치는 우리가 하는데 쟤네는 선거 때마다 불쑥 나타나 당연한 듯이 나를 뽑아달라고 한다’는 우리 대화 속에 심심찮게 등장했던 이 대목은 두 가지 불만을 집약해 보여주는 말이었다.
불만의 원인을 좀 더 파고들면 어느 한 쪽 탓으로 돌릴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무튼 정당 활동이 시민과의 접점을 가지길 원하는 시민 요구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당이 후보를 결정하면서 왜 우리 의견을 묻지 않냐?’는 두 번째 불만은 실은 정당한 요구는 아니었다. 당원 아닌 시민이 당원의 권리를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들은 후보 결정을 위해 당원 의견 수렴 등 내부의 민주적 절차를 갖고 있는데 그 권한을 갖고 싶으면 당원으로 가입하면 될 것이지 왜 권한 범위를 넘어선 요구를 하느냐고 정당은 충분히 항변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과천의 시민사회 일원들은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과 후보를 지원하며 선거운동을 해 왔고 당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이를 감안해 비당원인 지지자들에게도 그에 적합한 의사결정권한을 부여했더라면 그에 대한 불만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정당의 배려 부족과 함께 정당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 부족, 기존 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맞물려 정당 대신 독자적인 정치집단을 만들어 선거를 치르게 된 것이다.
정당이 싫어서 정당(아직 법으로 허용되지 않은 지역정당)을 만들었지만 스스로를 정치집단으로 규정하기 꺼려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과천풀뿌리정치모임>이라는 단체 명칭이 <과천풀뿌리>로 정리된 것은 정치에 대한 회원들의 부정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기존 정당에 대한 문제제기로 출발한 <과천풀뿌리>는 지난 3년간 열심히 활동해 왔다. 정보를 시민과 공유하고 소통하며 활동의 접점을 만들려고 그토록 노력한 정당은 내 보기에 없는 것 같다. 활동의 방향과 내용에는 다소 이견이 있지만 기존 정치에 대해 비판해 온 지점들을 <과천풀뿌리>는 스스로의 활동을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들을 해왔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순수한 시민’이란 말이 갖는 함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과천풀뿌리>가 선거에서 승리한 후 회원들은 이것이 일반 시민이 이뤄낸 쾌거라고 기뻐했다. 풀뿌리에 참여한 ‘일반 시민’과 ‘정당 활동을 하는 시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 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는 정당과 다르다. 순수한 시민들이 하는 정치다.’는 말에 담긴 현 정치에 대한 불신과 터부(taboo)를 걷어내는 일이 다음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정당 하나쯤은 누구나 가입하고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거리낌 없이 활동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그 때는 ‘순수한 시민’이라는 불순한 단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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