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네 명의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나이에 걸쳐 있는 이들은 과천에서 자라거나 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모두 결혼해 과천에서 살고 있습니다. 높은 주거비 때문에 이곳에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언젠가는 과천에서 일하며 먹고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네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거의 40대 이상으로,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귀한 존재들이 바로 청년들이었는데 반갑게도 저는 이들을 지난 선거에서 만났습니다. 서형원 의원의 캠프에서 기획했던 청년모임에 참석했다가 알게 되었지요.
과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과천 곳곳이 추억어린 장소입니다. 우물가, 중앙공원, 굴다리 형태네집.. 단어 하나로 통하는 이들의 공감대가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과천, 청년들의 수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는데 순식간에 천 명 이상이 모여들었고 현재 3,500명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내년부터 없어질지 모를 과천 거리극 축제를 안타까워하고, 청년들의 신문을 만들 궁리를 하며, 공부모임을 해볼까 이런 저런 일을 해볼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는 청년들이 동네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얼지 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높은 집값으로 젊은 세대와 어린 아이들이 점점 줄고 있는 과천, 지속가능한 과천의 미래는 이들의 정착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줄줄이 이어질 개발사업과 재건축이 과천의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습니다만 풀어야 할 숙제 하나 마음에 얹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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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3년 전 좌담회가 생각나네요.
지금 40대 중반을 훌쩍 넘어버린 이들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무슨 꿈들을 나눴을까요?
과천시지에 기록된 글을 옮깁니다. (출처: 果川市紙 www.gcbook.or.kr)
시민사회단체 일꾼 좌담 ‘2021년의 과천을 꿈꾸며’
- 날 짜 : 2001년 5월 21일(월) 오후 5시
- 장 소 : 과천시민회관 시티홀 및 야외무대
- 참석자 : 이해정(한살림 과천지부), 조성원(과천 녹색가게),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박병선(과천환경운동연합), 윤건원(민족예술인총연합 과천지부)
- 사 회 : 최경송(과천시의회 부의장)
최경송 : 안녕하세요. 다들 자신의 활동공간에서 엄청나게 바쁘신 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과천 지역에서 문화운동, 환경운동, 먹을거리운동 등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분들, 그중에서도 직접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상근자 분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각 단체에서도 가장 젊은 사람들이 또 모이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들 활동의 철학과 내용이 또 10년 후, 20년 후의 과천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하튼 그동안 모두 좋은 일에 봉사하면서도 워낙에 바쁜 탓에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만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서로서로 궁금한 단체 소식도 나누고 또 함께 과천의 미래를 꿈꾸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모이신 분들 중에서는 가장 연장자이신 한살림의 이해정님께서 먼저 총대를 메어주시겠습니까? (좌중 웃음)
이해정 : 저도 한살림 쪽에 가면 참 어린 축에 속하는데, 오늘 좌담회에서는 노땅에 속한 셈이네요. (좌중 웃음) 한살림은 처음에 생협운동으로 출발해서 이후에 사단법인화 했죠. 현재는 국내 250억 규모의 유기농 시장에서 130억 정도를 한살림이 점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 2만 3,000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이곳에 지부는 세 곳이며, 매장은 모두 열두 곳이 있습니다. 한살림의 특징은 외부사업보다는 내부사업을 위주로 펼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에서의 원칙과 강령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죠.
일본 생협운동의 경우 대체적인 주류는 소비자운동의 일환으로서 ‘공동구매’라는 차원에서 활성화되었고, 따라서 ‘유기농 생산’의 여부는 중요치 않은 반면에 우리의 경우는 농민운동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일본에 비해서 한층 강한 요구와 정신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현 : 다른 분들께서는 과천의 한살림 회원이 몇 분쯤 되는지 아시는지요? 아마 다른 단체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회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해정 : 과천에는 모두 1,300명의 회원이 있답니다. (일동 탄성) 모두들 30대 초반의 젖먹이 엄마들이 주축이죠. 활동이 어렵지만 활동에 대한 갈증이 강하다고 할 수 있죠. 뭐니뭐니 해도 한살림의 가장 큰 강점은 생산자와 직접 연결이 되어있다는 점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MF와 같은 어려운 상황을 맞아서 매출이나 활동력이 저하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지만, 오히려 광우병 파동 같은 문제를 거치면서 더욱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최경송 : 오는 6월 26일에 한살림 과천지부가 본격적인 창립을 맞이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해정님께서 과천지부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시게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게 된 원동력이랄까, 힘은 어디서 나오시게 되었습니까?
이해정 : (가방 안에서 과천지부 창립식 초청장을 꺼내서 부산하게 돌리면서) 이번 창립식에 꼭 다들 오세요. 한살림 과천지부를 위해 1년 넘게 준비해왔습니다. 제게 힘이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한살림의 동료회원들입니다. 한살림의 회원들이 내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창립을 계기로 지역운동에도 더욱 열심히 참여하고자 합니다. 지역운동의 장에서는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과 적극적이며 솔직하게 연대하고자 합니다.
최경송 : 감사합니다. 이제 새롭게 창립을 준비하는 쪽이다 보니 여러 가지를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바통을 이제 녹색가게로 넘겨보도록 할까요?
조성원 : 과천 녹색가게의 첫 출발은 1991년 주부들이 단지별로 자원 재활용운동을 시작했던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초기 멤버들은 이때에 대한 애착이 크신 것 같습니다. 자원봉사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상설매장을 갖추기에 이르도록 많은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자원 재활용운동을 단지 곳곳에서 활발하게 펼쳐나가면서 과천시에 제안하여서 처음에는 시민회관 지하에 5평 남짓한 공간을 확보했지요. 그 좁은 공간에 이용자들이 폭주하고 너무 인기가 좋으니까 1998년에는 현재 사용하는 이 시민회관 2층 훨씬 좋은 자리로 옮겨올 수 있었습니다. 이곳 상설매장에서는 40여명의 자원봉사자분들이 힘을 합쳐서 운영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용자 카드가 2,950명을 넘어서는 시점에 와 있구요, 또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중앙공원에서 알뜰시장(벼룩시장)을 열고 있습니다.박병선 : 녹색가게의 어떤 점이 다른 단체에 비해서 장점이라고 생각하세요? 조성원 : 저희는 내실 있는 ‘교육’을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고, 이것이 또한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이곳에서 함께 읽고 토론한 책들 중에서 브라질의 ‘꾸리찌바시’ 이야기와 일본의 한 마을을 그린 ‘숲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주 감명 깊었습니다.
박병선 : 과천환경운동연합도 녹색가게처럼 처음에는 ‘과천시민모임’이라고 하는 주민의 자발적인 자치모임을 그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독서회, 토론회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지역현안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그에 대한 시민들의 대응을 모색했던 공간입니다. 과천시에 어울리지 않은 규모의 소각장에 대한 반대운동 등등을 거치면서 1996년 말에 환경운동연합의 과천 지역조직으로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현안문제나 환경문제에 있어서 이슈 파이팅을 펼쳐왔습니다. 현재에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과 서울대공원 녹지훼손 반대운동 등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좀 더 지역에 밀착하고 회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서 올해 사업목표를 회원과 함께하는 환경운동, 어린이 환경운동 확산 등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부 사업에는 정통하지만 외부 사업은 이제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는 한살림과는 또 정반대되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할까요? (좌중 웃음) 서로서로 나누고 배울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 현 : 과천에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들이 많은데, 이들이 연대할 수 있는 주제를 잘 잡으면 시민들의 ‘자치’의식을 일깨우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천만큼 또 인구규모나 도시의 조건을 볼 때 진정한 ‘시민자치’를 실현하기에 좋은 조건의 지역은 또 없을 것입니다.
여름철 저녁 무렵에 중앙공원 야외무대 같은 곳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시원한 바람 쐴 겸 모여서 직접 보육문제, 사회복지문제, 생태와 환경문제를 논의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고 개선해나가기 위해서 과제를 설정하고 함께 이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역할분담을 하고 실천을 해나가는, 과천 시민광장이랄까요? 이런 실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일하는 시민자치정책센터는 과천 지역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아니지만 전국에서 이러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한 모델들을 개발하고 확산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윤건원 : 민족예술인총연합은 198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그 당시 반독재, 통일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제기가 활발하던 시기입니다. 이때 민예총의 지향점은 자연스럽게도 보다 나은 사회와 내일을 위한 합목적적인 실천 활동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 또 다른 출발을 하게 됩니다. 지부 중심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40여 곳의 지부가 있습니다만, ‘지역문화의 활성화’라는 새로운 명제를 중심에 놓고 활동하는 지부와 회원 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모색의 맥락 위에서 민예총 과천지부도 2001년 신년 대동제 준비를 계기로 올해 봄에 결성되었습니다.
조성원 : 그럼, 과천에는 이미 마당극제가 매년 열리고 있는데, 민예총 과천지부는 이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윤건원 : 과천 마당극제가 빛나기 위해서도 시민이 참여하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지역축제는 시민이 발의해서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문화가 평소에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천은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은 도시입니다. 재미있는 행사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녹색가게가 알뜰시장을 열 때 민예총이 함께 퍼포먼스와 공연을 곁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과천지부에는 민예총 문화교실을 통해서 민요, 탈춤, 여성연극, 풍물 등을 함께 하고 있는데요, 인기가 좋습니다. 6월 9일에는 민예총 소속의 어머니 오케스트라단이 뜨니까 다들 꼭 오세요.
최경송 : 좋습니다. 다들 바쁜 활동 탓에 평소 나누지 못했던 각 단체의 역사와 뿌리, 그리고 자신의 고민과 활동의 원동력을 말씀하시다 보니 이것으로도 벌써 만만찮은 시간을 잡아먹는군요. 그렇다면 이제 또 현재를 훌쩍 뛰어넘어 한번 미래로 눈을 돌려보기로 합시다. 자, 여기 모인 20대, 30대 젊은 활동가들이 40대, 50대 중견이 되었을 때를 한번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좋습니다. 2021년이 되었다 칩시다. 이때 과천은 어떤 모습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하는지 1분 스피치를 해보기로 합시다. 초시계를 놓고 1분이 초과되면 제가 땡 치겠습니다. 한번 자유롭게 2021년 과천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봅시다. 그럼, 어떤 분이 먼저 시작해보시겠습니까?
김 현 : 제가 먼저 하죠. 초시계 준비되셨나요? (좌중 웃음) 먼저 과천의 복개천을 다시 뜯어내어 과천 한복판에는 폭 10m의 시내가 흐르게 됩니다. 주민이 언제든지 나와서 시원한 물을 즐길 수 있는 친수공간이 이렇게 마련됩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어린이의 안전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어서 아파트 지역에서는 시속 30㎞ 이하로 제한됩니다. 차량으로부터 안전한 도시가 됩니다. 또 자전거도로 길이가 총 50㎞를 넘게 되고 서초와 과천이, 또 안양과 과천이 자전거도로로 연결됩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일이 가능해진 거죠. 그리고 제가 아까 이야기했던 과천 시민광장이 정기적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윤건원 : 이번엔 제가 할까요? 음, 문화 소모임이 대거 활성화되어서 풍물·합주·연주·독서모임이 동네에 넘쳐흐르게 됩니다. 문화 공연을 위한 공간이 충분히 마련됩니다. 매주 주말 같은 특정 시간에는 항상 인파로 북적거리는 문화거리가 조성됩니다. 그 문화거리 뒤쪽으로는 생필품을 사고팔고 교환하고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곳은 상행위와 같은 경제적인 목적보다는 유기농 야채와 과일이 팔리고 자기가 쓰던 물건을 내어 와서 다른 물건과 교환되는 그야말로 자생적인 자발적인 시장입니다. 이런 광경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가 되어서 과천 외지에서 과천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들어와 함께 즐기는 도시가 됩니다.
박병선 : 좋습니다. 1분이라는 시간이 참 짧군요. 2021년 과천에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생태학습장이 있었으면 합니다. 수목원과 같은 풍요로운 숲을 가꾸게 되어 자전거를 타고, 걸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중앙로가 없어지고 이곳이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보행로와 광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과천과 지역 농촌이 직접 연결되어서 수많은 직거래장터가 활성화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해정 : 저는 땅 밟고 사는 집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흙집들을 짓고 살고 그 주변에 자기 텃밭을 가꾸고 살 수 있도록 말이죠. 적극적인 유기농업이 완전히 생활화될 수 있도록이요. 저도 차 없는 거리가 되었으면 해요.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발 정말이지 과천 시내에 ‘맛있는 채식식당’이 하나라도 생겨났으면 합니다. 그곳에서 제가 주인장을 하고 있으면 더 좋구요.
한여름 밤의 덧없는 짧은 꿈처럼 1분 발언을 마친 다음에 과천의 젊은이들은 역설적이게도 2021년의 과천은 지금보다 조금 더 황폐해졌으면 좋겠다는 푸념 비슷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연과 재정이 풍족한 도시 과천이 좀 더 가난해지게 되면, 지금보다 좀 더 ‘삶’의 문제들이 진정한 관심을 얻게 되고 치열하게 다루어지고 토론되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어슴푸레한 어둠이 깔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또 자주 이렇게 모이고 어울렸으면 하는 희망을 나누었습니다. 역시 아직은 과천에서 ‘잠자는’ 젊은 사람들은 많아도 과천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너무 소수이고 외롭고 힘들구나 싶었습니다.
김동근┃과천환경운동연합 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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