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3년 11월 29일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가 주최한 '주민자치회 이슈점검 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입니다.
주민자치회 정책 실시 과정의 문제점과 과제
제갈임주(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2010년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시군구 통합에 따른 읍면동 자치기능 강화의 목적으로 특별법 내에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 규정이 마련되었다. 이는 주민자치회가 그 자체의 필요성보다는 다른 정책의 부차적인 문제로 제안되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행정의 관심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채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 근린자치분과는 주민자치회의 권한이 강화된 세 가지 모형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고, 위원회는 이 중 최종적으로 ‘협력형’을 선택해 시범실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난 7월 선정된 31개 시범실시 지역에서는 이미 주민자치회를 구성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지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점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공론화 과정의 부재
주민자치회에 대한 논의가 주민자치위원이나 지역 주민들과의 교감 없이 전문가 중심으로만 이뤄짐으로 인해 정책이 발표된 시점은 물론 시범실시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에도 각 지역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풀뿌리 자치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만든 주민자치회가 정작 그 정책을 구현할 주체인 주민도 알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음은 이 제도가 앞으로 형식적으로 흐르게 될 가능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주민자치회 실시에 대한 주민설명회나 안내문 등을 통해 주민에게 널리 알리고, 활성화를 위한 공론의 장을 형성함으로써 주민의 이해와 참여를 높여 제도의 실효성을 기해야 할 것이다.
2. 정해진 유형의 사업 지원
안전행정부에서는 공개모집과 심사를 통해 시범실시 지역을 선정했는데 지역에서 신청 시 일곱 가지 유형(지역복지형, 안전마을형, 마을기업형, 도심창조형, 평생교육형, 지역자원형, 다문화 어울림형)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을 선택해 신청하도록 했다. 이 결정으로 이번 시범실시에서 특정사업에 대한 재정 지원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역에서는 사업재정을 지원받기 위한 방편으로 주민자치회를 신청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회가 구성되기 전에 주민자치위원들조차 고민이 형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시범실시 신청을 위한 계획서는 누가 썼을까? 주민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 몫은 행정에게로 돌아갔을 것이다. 설령 자치위원들의 준비가 있었더라도 주민 간 충분한 의견조율과 합의 과정 없이 사업의 유형부터 결정하고 계획서를 제출하게 한 것은 자치에 역행하는 조처였음이 분명하다. 지역의 의제는 어느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하게 분출되는 주민의 욕구를 조정하고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시간과 절차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동시에 그 과정 자체가 ‘자치’의 중요한 요건이 된다. 이미 지역별로 사업유형이 정해졌지만 지금부터라도 차후 진행과정에서 제기되는 주민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결정권한을 보장하여 이를 통해 자치기능이 더욱 촉진되도록 행정의 유연한 대응과 협조가 필요하겠다.
3. 위상 및 권한의 변화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위원회보다 제도적 위상은 더 높아졌다. 예컨대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에 관한 규정이 ‘주민자치센터 설치・운영 조례’ 내에 포함되어 있어 주민자치위원회가 센터의 운영위원회 정도의 위상에 머물렀다면, 새로이 설치된 주민자치회는 자체 조례가 마련됨으로써 독립적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위원의 위촉권자도 읍면동장에서 자치단체장으로 바뀌어 형식상 읍면동장의 하부기구로 존재하던 주민자치(위원)회가 읍면동장과 동등한 관계에서 협의하고 실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이는 주민자치위원들의 오랜 민원을 해소한 측면이 있지만, 위촉과 최종 결정권한을 가진 주체가 행정이라는 점에서는 동장이나 단체장이나 다를 바 없다는 의견이 다른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다. 즉, 형식적으로는 읍면동장과 평등한 파트너십을 이루지만 주민대표기구라는 위상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도적 위상의 변화 외에 역할이나 활동과 관련한 권한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안전행정부가 제시한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안에서 정리한 주민자치회의 기능은 아래와 같다.
1) 읍・면・동(또는 동, 읍․면) 행정기능 중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에 대한 협의
2) 읍・면・동(또는 동, 읍․면) 행정기능 중 주민자치회에 위탁하여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는 업무의 수탁 처리
3) 기타 각종 교육 활동, 행사 등 순수 근린자치 영역의 주민자치업무
이중 주민자치 업무는 기존과 비교해 새로운 역할이 아니다. 행정업무는 읍면동 중심의 행정이 그대로 맡을 테고, 위탁업무는 그 자체가 의사결정의 권한이 별로 없는 업무인데다 협의가 필요한 업무에 대해서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심의・협의 기능만 부여되었으니 전체적으로 더 강화된 권한이 주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4. 위원 구성의 관건 - 주민 대표성과 실행력의 확보
위원을 내실 있게 구성하기 위한 두 가지 핵심 관건은 주민 대표성과 실행력의 확보이다.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가 특정 소수 주민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참여하기 원하는 주민에게는 기회가 열려있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에 관심과 열의가 있는 주민으로 위원이 구성된다면 실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할 수 있는 실행력도 높아지게 된다.
1) 모집 과정 - 주민자치위원회의 승계, 폐쇄적 모집과정
시범 실시되는 31개 지역의 조례를 살펴보면 주민자치위원과 새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의 위원 수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주민자치위원 ‘25명 이내’에서 주민자치회 ‘30명 이내’로 약간 늘어나는 정도인데, 이는 변화에 대한 모색 없이 기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이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그대로 승계될 우려가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한 지역에서는 아예 주민자치위원 승계 조항을 조례에 명시했고, 몇몇 지역에서는 주민에 대한 홍보 없이 내부적으로 위원을 결정하고 공개모집의 형식만 취했다. 심지어 동장이 일부 주민자치위원을 정리한 후 자치회로 전환한 곳도 있다. 개방성과 공정성의 확보를 위해 마련된 추첨 방식을 도입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2) 선정 방식
주민자치회 위원의 선정 방식 역시 주민자치위원회 선출 시 권장되는 방식을 비슷하게 적용했다. 안전행정부에서 제시한 표준조례안 제9조와 제10조에서는 각각 위원과 선정위원의 선출방식을 제시하고 있는데 아래 내용을 보면 이들에게 주민 대표성을 부여하기에는 미흡한 면이 많아 보인다. 31개 지역 중에는 공개모집하는 주민대표 수를 대폭 늘리거나 대상 단체를 확대하고 구체적인 분야를 열거하는 등 다양한 위원의 확보를 위해 애쓴 흔적이 몇몇 지역에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은 표준조례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위원의 선정 (표준조례안 제9조) |
① 지역대표 위원: 이장・통장 연합회에서 추천한 후보자 중 00명 ② 주민대표 위원: 공개모집 후 추첨 또는 선정위원회 선정한 00명 ③ 직능대표 위원: 전문가, 직능단체 대표 등을 대상으로 공개모집 후 위원선정위원회에서 선출한 00명 |
위원선정위원회 (표준조례안 제10조) |
9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여 단체장이 위촉한다. ① 읍・면・동장 추천위원 0명 ② 이・통장 연합회 추천위원 0명 ③ 해당 지역 대표 연합단체 추천위원 0명 (지역 여건에 따라 추천자를 이・통장 연합회장, 학교장, 농협조합장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 |
3) 동네의 변화를 끌어낼 역량 있는 주민과의 결합 모색
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동네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오랜 기간 헌신과 봉사로 일해 온 주민이 있는가 하면 최근 활발해진 마을 만들기나 사회적 경제, 참여예산 등의 활동을 통해 실행력이 검증된 주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관변단체, 직능단체, 마을만들기와 참여예산, 각종 소모임 등 동네의 다양한 풀뿌리 역량들이 주민자치회로 들어오거나 협력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간다면 실행력이 강화될 뿐 아니라 지역공동체 형성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마치며…
아무리 좋은 제도도 실행할 사람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유명무실해지기 마련이다. 주민자치회의 시행에 앞서 이를 실현할 다양하고 역량 있는 주민(집단)에 파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자치를 활성화하고 민주적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공유와 공론화의 과정도 병행되어야 한다. 법의 제정으로 주민자치회 운영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마련되었지만 자치활동을 뒷받침할 주민의 권한은 많이 미흡한 상태이다. 권한의 부여는 자치능력을 배양하는 지름길이다. 시범사업에 있어서도 지금처럼 사업에 대한 예산이 아니라 일정한 예산을 주고 자율적으로 일을 기획・집행하도록 주민을 비롯한 자치회에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주민의 역량은 자라나고 풀뿌리 자치의 활성화라는 목표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公益人間 > 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천시 예산, 정말 어려운가? (0) | 2015.01.24 |
---|---|
생활인의 정치를 꿈꾸는 과천풀뿌리정치모임 (0) | 2014.03.30 |
과천지역 공동체 활동의 성과와 발전방안 (0) | 2014.03.30 |
행정정보공개-안산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연구모임 (0) | 2014.03.29 |
중앙정부의 단독결정에 반대한 과천시의 역사 (0) | 2014.03.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