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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人間/쓴 글

국내 청원1호 - <과천시민모임>의 탁아소 건립 청원

by 제갈임주 2014. 3. 29.

[과천시의회 지방자치20주년 모범사례 연구]

 

국내 청원1- <과천시민모임>의 탁아소 건립 청원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보육시설이 많이 있지만, 1980년대만 해도 가정에서 믿고 아이를 맡길 만한 탁아시설이 많지 않았다. 보육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었고, 국가는 어린이 보육의 1차적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이유로 탁아입법제정을 반대했다. 19903,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지하 단칸 셋방에 갇혀 있던 어린 남매가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들끓던 여론에 밀려 그 해 12영유아 보육법이 제정되지만, 보육비용은 부모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등 여전히 보육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미약했다. 그러한 시절에 과천에서는 보육과 관련한 의미있는 시민들의 활동이 있었으니, ‘탁아소 건립 청원운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과천 시민들의 탁아소 건립 청원은 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지역의 문제, 특히 보육이라는 생활의제를 가지고 운동을 전개한 당시로는 드문 사례였다. 게다가 법으로 보장된 청원이란 제도를 활용한 전국 최초의 시도였다.

 

탁아소 건립 청원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단체는 <과천시민모임>이었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주민 스스로 주인이 되어 해결한다는 취지로 만든 이 모임의 탄생은 지방자치제도의 부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과천시민모임이 발족한 해인 19912월에는 기초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과천성당은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시민들에게 제안했고, 이 제안에 동참한 시민들은 선거감시 활동을 거치면서 상설적인 시민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모임을 해산하지 않고 <과천시민모임>으로 전환하였다. <과천시민모임>의 모체가 되는 공정선거감시단은 정치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활동이었지만, 시민모임에서는 생활과 밀착된 의제를 다루고 대안을 마련하여 시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는 방향으로 활동목표를 정했다. 이는 창립총히에서 통과된 회칙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데, 당시 통과된 회칙에서는 본 회는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시민생활 본위의 정책을 시정에 반영하기 위해 참여민주주의를 활성화하고 지역공동체 형성에 의한 지역주민의 자치를 실현함으로써 시민이 주인되는 살기좋은 과천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고 선언하였다.

과천시민모임이 사회적 이슈를 놓고 지방정부와 대립적인 위치에 서서 반대 운동을 하기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을 벌인 데에는 과천이라는 지역적 특성도 작용했다. 과천은 계획도시로서 공장지대나 혐오시설 등이 전혀 없는 쾌적한 주거행정도시로 출발했다. 주민들은 이런 동네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었고 이곳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보자는 욕구가 강했다. 고학력자가 많은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 과천시민모임의 회원들은 정부에서 내는 문건과 외국자료를 뒤져 지방자치제도의 핵심과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제도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하였고, 지방자치의 주인은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한편 과천은 소형 아파트가 많고 젊은 층이 많아 보육대상 아동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동네에는 공립 탁아시설이 한 군데도 없어, 주민들은 민간 탁아소를 이용해야 했는데 비용도 비쌀뿐더러 보육의 질도 문제가 되었다. 과천시민모임의 구성원 중에는 아이를 키우는 회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대부분 직장에 다니거나 공부를 하고 있어 이들에게도 탁아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였다. 주변에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한 회원들은 아이들을 안심하며 맡기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투합이 되었다. 육아는 일정부분 사회가 책임져야 할 몫이라는 원칙하에 시립보육시설의 건립을 첫 번째 과제로 정했다.

먼저 시의 가정복지과와 접촉을 하였으나, 시에서는 번거롭고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시민모임은 지방자치법에 보장된 청원이라는 절차를 활용하여 시립보육시설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회원들은 지난 기초의회 선거에서 시의원들이 시립보육시설에 대한 공약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고 시의회를 대상으로 청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반응 역시 그리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안정적인 보육과 탁아시설의 필요성에 대해 그 절실함을 공감하지 못하는 의원들이 많았고 자신의 공약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의원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경필의원을 소개의원으로 하여 청원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이제까지 반대서명은 많이 했지만 필요한 것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서명은 회원 개인들에게도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서명지를 만들어 복사기로 돌리고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회원 중에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해온 이들은 집집마다 물품을 배달하면서 서명을 받았고 학부모와 이웃들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서명을 받기도 했다.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일은 누구나 호응할 만한 주제여서 남녀노소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405명 주민들의 서명을 받는 과정은 시민의 권리와 시의회의 역할, 보육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소규모 도시 과천에서 4백여 명 주민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방자치법에 의한 최초의 청원 사례로도 기록되었다.

 

시민들의 청원을 접수한 시의회는 본회의 토론을 거친 이후에 안건을 시에 넘겼고, 과천시에서는 보육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당장은 어렵지만 이후 설립되는 보육기관을 공신력 있는 사회복지법인에 위탁할 것을 약속했다. 첫 번째 결과로 과천에 소재한 구세군사관학교에서 시의 예산을 받아 탁아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탁아소 건립을 청원했던 사람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얻지는 못했지만 몇 년이 지난 후 과천의 시민들은 구세군 어린이집과 동마다 세워진 시립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에서는 사설 탁아소에도 교재교구비를 지원하는 등 육아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시정에 더욱 확대하여 반영하였다.

개별 가정이 알아서 책임져야만 했던 보육의 문제를 이웃과 함께 풀어보고자 했던 시민들의 시도는 오늘날에도 보이지 않는 전통이 되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부모들의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공동육아와 대안학교가 전국적으로 볼 때 가장 밀집된 곳이 과천이며, 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의 학부모 참여가 매우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과천이 강남과는 또 다른 방향의 교육열을 보이고, 동네가 더불어 아이들을 키우고자 하는 다양한 실험이 계속될 수 있는 이유는 20년 전 지방자치의 정신을 실현하고자 했던 이들이 뿌린 씨앗이 그 기반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참고

 

- 果川市誌홈페이지 (http://www.gcbook.or.kr)

- 과천시민모임 인터넷 까페 (http://cafe.daum.net/gc-people/fDgu/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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