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시의회 지방자치20주년 모범사례 연구]
당사자의 참여로 조례를 살린다
- 과천․목포시 장애인 편의시설 사전점검 조례
많은 조례들이 힘겨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지지만, 막상 제정이 된 후에는 사문화되어 잠자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조례가 제정된 후에도 잘 실행이 되는지 감시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 소개할 과천시의 「장애인 등 당사자에 의한 편의시설 사전점검 및 설치ㆍ개선 지원 조례」(2009.3제정)와 목포시의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사항 사전점검 등에 관한 조례」(2004.1제정)는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 당사자가 시설 설치에 직접 참여하여 편의시설 이용에 실효성을 도모한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전자는 의원발의, 후자는 주민발의로 제정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두 사례가 제정된 시기는 서로 다르나 둘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주민 발의를 통해 입법화한 장애인 관련 국내 첫 조례이자 동시에 전국 최초로 건축물 편의시설 문제를 조례화한 목포의 사례가 있었기에 5년 후 과천의 조례는 더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좋은 조례는 널리 확산되기 마련이다. 2004년 목포에서 처음 제정된 장애인편의시설 사전점검 조례가 지금은 삼십여 곳에서 제·개정을 거듭하며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 진화 발전하는 조례가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 역시 두 지역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과천시 「장애인 등 당사자에 의한 편의시설 사전점검 및 설치ㆍ개선 지원 조례」
휠체어를 탄 여성 장애인 A씨가 동네 중심상가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낡은 건물에는 경사로가 없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건물 입구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오늘따라 병원은 환자들로 북적거린다. 한참을 기다리다 못해 화장실에 갔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화장실에서 하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A씨는 그만 바지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과천시 지체장애인협회의 김용주 사무국장에게 위와 같은 민원이 들어왔다. 경기도 장애인편의시설설치 도민촉진단으로서 수년간 장애인 편의시설 점검활동을 해온 김씨는 이미 여러 번 시와 경기도에 편의시설 확충을 제안했으나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장애인이 화장실 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화가 난 김씨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했다. 그러나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이전에 지은 건축물에 대해서는 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답변만이 되돌아왔다.
과천의 낡은 건물과 근린생활시설에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했다. 경사로, 점자표지판 등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장애인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곳도 많았다. 공공건물이라 해도 그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법률은 있으되 법의 취지는 민·관에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고, 설령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도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열악한 편의시설에 대한 장애인들의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과천시의회는 2007년 12월 과천시 청소년수련관 개관을 계기로 공공기관의 편의시설 실태를 본격적으로 점검하기 시작했다. 지체장애인협회 과천시지회의 장애인 당사자들, 경기도 장애인편의시설기술지원센터의 전문요원, 해당 시설의 담당 공무원과 함께 완공된 청소년 수련관과 운영되고 있는 시립어린이집의 편의시설을 점검하였다.
“결과는 낯이 붉어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구분이 되어 있지 않거나 잠금장치가 없고 용변기 옆 손잡이도 거꾸로 달려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버튼은 정해진 높이에 달려 있지 않았고 휠체어 경사로도 기준과 맞지 않았다. 법적 기준에 의거하여 이제 막 설치했다는 편의시설들은 다시 또 돈을 들여 뜯어고쳐야 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생활정치연구소, 『지방자치 가이드북』, 2010. 41p.)
이듬해 「경기도 장애인 등의 편의시설 사전점검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었으나 같은 문제는 반복되었다. 장애인 권익보호를 위해 활동해온 과천시의 한 장애인단체는 의원들에게 조례 제정을 건의했고, 시설을 이용할 장애인이 직접 편의시설 설치에 참여하는 것만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몇몇 의원들은 ‘당사자에 의한 편의시설 사전점검 조례’ 제정을 위한 검토에 곧 착수했다. 의원들은 여러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의 유사조례를 비교하여 가장 선진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각 조례의 장점을 취하면서 지역 실정에 맞는 새로운 사항을 추가하여 조례안을 만들었고, 2009년 3월 서형원·황순식 두 의원의 발의로 과천시의 조례가 제정되었다.
신체적으로 불편한 시민이 어디든지 오고 갈 수 있는 도시 환경이 되도록 노력한 결과 건축물과 도로 공원의 편의시설이 많이 개선되었다.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몸이 불편한 당사자들에게는 큰 변화이다. 그래도 갈 길은 멀다.
며칠 전 개관한 한 도서관이 사용승인 전에 장애인 편의시설 사전점검을 받지 않아 장애인 단체가 시에 항의를 하는 일이 있었다. 사전점검을 하지 않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공공건축물은 ‘사용승인을 생략’할 수 있는 법의 허점 때문에 사전점검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과천시 편의시설사전점검 조례는 두 번째 개정을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다행이 이 조례는 당사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어서 허점을 찾아내고 고쳐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에는 의원들이 일차적으로 그 책임을 진다. 하지만 의원 개개인이 활동의 단위가 되는 현재의 의회 체계에서는 특정 분야의 정책과 조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과천시의회 서형원 의장은 “당사자의 참여를 제도화하고, 시민들의 조직적인 참여와 시민의식을 통해 조례의 실행을 견인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사자와 시민들의 참여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조례 그 자체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참고
- 자치법규정보시스템(http://www.elis.go.kr)
- 생활정치연구소, 『지방자치 가이드북』, 모티브북, 2010
- 우필호, 「주민발의 장애인편의시설 조례 제정을 통해 본 거버넌스 사례 연구」, 2005
- 목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홈페이지(http://www.okmokpo.or.kr), “2004년도 시민과 함께 성장하는 풀뿌리 시민운동 사례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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