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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人間/쓴 글

가난하게 함께 살아가는 동자동사랑방

by 제갈임주 2014. 3. 27.

가난하게 함께 살아가는 동자동사랑방


 

제갈임주(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뷰: 조승화(슈아) / 2012.6.29
 

지난 5월 홍대입구의 어느 한 공간에서 스무 명 남짓한 인권, 풀뿌리 활동가들이 모였다. 그동안 개별적인 만남은 있었어도 이렇게 집단적으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두 영역은 운동에 대한 각자의 고민이 있었다. 인권운동 쪽은 점점 부문 운동화 되는 것의 문제의식과 함께 시민과의 공감대를 넓혀야 하는 과제가 있었고, 풀뿌리 진영은 운동의 일상성과 대중성은 가지고 있으나 풀뿌리 운동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안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통해 자기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만남이 성사된 데에는 요즘 화두로 떠오르는 ‘인권도시’도 한 몫 했다. 최근 3년 사이에 인권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자체별로 인권조례 제정을 중심으로 한 ‘인권도시 만들기 운동’이 퍼지고 있다. 현장 활동가들에게 인권증진을 위한 지방정부의 노력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것이 조례제정으로 집중되는 현상과 시민이 대상화된 채 추진되는 점에 대한 우려가 활동가들 사이에는 공통적으로 있었다. 비슷한 공감대를 확인한 두 영역의 사람들은 서로 만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조승화(슈아) 씨를 처음 보게 된 건 그 자리에서였다.

 

지하철 서울역에 내렸다.
‘인권+풀뿌리 모임’에서 얼핏 보았을 때는 과묵해 보이던 슈아가 말을 잘 해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날 슈아와 같은 모둠에 있던 사람들은 분명 <동자동사랑방> 이야기를 듣고 많은 영감을 받은 듯 했다. 어떤 이야기들일지 궁금했던 나는 슈아를 찾아갔다. 
 

<동자동사랑방>은 서울역 맞은편에 자리한, 동자동의 쪽방촌 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인권단체다. 8년 전 쪽방에 들어와 살면서 주민과 어려움을 함께 해 온 엄병천 대표와 사랑방 마을기업인 <밥이보약> 식당을 운영하는 고형렬 씨가 주축이 되어 2008년 2월에 설립했다. <동자동사랑방>은 이름처럼 주민이 수시로 드나드는 동네 사랑방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잠시 들러 차를 마시고,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는 상담을 청해온다. 슈아는 이 곳 주민들을 ‘형’이라 불렀는데 그 날도 여러 명의 형들이 놀러왔고, 한 형에게는 의료비 지원과 관련된 상담을 했다.  

 

 

         ◎ 도심 속 동자동 쪽방촌
             (사진출처: 참여연대 신지은 http://www.peoplepower21.org/Welfare/669865)

 

 

<동자동사랑방>의 사무국장인 슈아는 서른 살까지 전혀 사회운동이라곤 접해보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도시사회학을 전공한 그가 논문을 쓰기 위해 철거민 단체를 만난 것이 운동과의 첫 대면이었다. 철거민의 삶을 접한 슈아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요구가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 사람이 자기보다 힘센 상대, 그것도 건설업체나 국가와 같이 거대한 상대에 맞서 싸우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그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또, 빈곤 현장의 열악함과 싸움의 지난함을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함께 부채감도 생겼다. 철거문제를 공부로, 그저 흥미로 접근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현장의 여러 싸움을 통해 도시의 가려진 그림자들을 보고 난 후에 자기에게 남겨진 부채감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시간을 보냈다. 공부보다는 현장에서 좀 더 배우기로 결론을 내렸다.
 

마침 <전국노점상총연합(전노련)>에 한 자리가 났고, <전노련>과 <빈곤사회연대>에서 4년간의 상근 활동을 했다.
운동 현장의 역동성에 감동을 받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활동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문제가 터지면 성명서 쓰고, 기자회견 하고, 집회와 토론회를 열고, 정책문제로 가면 국회의원을 만나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압박을 하는, 일련의 정해진 시나리오를 답습하면서 슈아는 조금씩 지쳐갔다. 마음에 울림을 주지 못하는 기계적인 운동을 이어 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누군가 곁에서 고민을 함께 나눌 선배 활동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친절한’ 선배는 그리 잘 보이질 않았다. 활동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2년 동안 일을 접고 쉬었다. 그 중 후반 일 년을 동자동 쪽방에서 지냈다.

 

 

              ◎ 쪽방 복도 (사진출처:오마이뉴스 허진무 http://bit.ly/7DssyX)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한 평 내외 크기의 방. 공동화장실과 공동세면장이 있고 취사장은 따로 없다. 일세나 월세를 내며 기초생활수급자나 수급자에 준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 공간을 우리는 쪽방이라고 부른다. 정부가 ‘쪽방’으로 정한 곳은 구호물품 등 약간의 혜택이 있고 재개발이 될 경우 이주비 등의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여름에는 빈 방이 제법 있지만 겨울에는 노숙을 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쪽방에 들어오려 한다. 쪽방은 노숙으로 가기 직전의 마지막 주거안전망이다.
서울 도심의 화려한 빌딩숲 사이에 섬처럼 존재하는 쪽방촌, 거기서도 또 칸칸이 벽으로 구분되어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은 세상과 이웃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이렇게 고립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망을 회복하는 일이 <동자동사랑방>의 역할이다.

 

"여긴 되게 재밌어요. 언제든지 어르신들이 불쑥 와서 자기 얘기를 편하게 다 하고 가세요. 그 자체로도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슈아는 스스로를 그리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말하지만 사람과 어울리는 일을 편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즐겁다고 했다.  
어려운 점이 없느냐고 묻자, 사무실 유리창이 깨지는 일 말고는 특별히 없단다. 
주민들은 속이 상하면 종종 <동자동사랑방> 유리창에 돌을 던진다. 사실 <동자동사랑방>은 사회복지기관이 아니다. 주민과 같은 편에 서서 동사무소를 상대로 싸워줄 수는 있어도, 급할 때 병원에 따라 가고 수급 신청할 때 어려움을 덜어줄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현금과 물품은 가진 것이 없다. 그래도 주민들 눈에 <동자동사랑방>은 어디까지나 가장 가까운 복지시설이었다.
“너희가 나한테 쌀을 줬냐 뭐를 줬냐?” 힘들 때면 술을 먹고 사랑방을 불 태워 버릴 거라며 원망하는 주민들의 분노를 슈아는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착해야 한다는 고정된 시선이 있다. 욕하고 싸움하고 알콜 중독인 사람들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그들을 게으르고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람으로 규정해 버린다. 기초생활수급비로 나라에서 주는 43만원은 딱 굶어죽지 않게 주는 돈이다. 일용직으로 일을 했다가는 바로 부정수급자가 되고, 수급이 끊기면 당장 방세도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동사무소 가서 깽판이라도 쳐야 하나라도 더 받을 수 있는 이들에게 온순한 빈곤층은 허구일 뿐, 분노가 더 자연스럽다고 슈아는 말한다.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주민 뿐 아니라 동자동사랑방도 마찬가지다. 사무국장은 활동비로 매월 50만 원을, 대표는 올해부터 30만 원의 활동비를 받는데 그나마 매달 가져가지도 못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주민들이 때때로 챙겨주고 먹고 사는 것이 동네에서 해결되니 경제적 문제를 큰 어려움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 슈아와 주민들.
           중앙일간지에 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사진을 올린다. 중앙일간지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욕심이 없는 이들이지만 사랑방으로서의 욕심은 있다.
하나는, 쪽방 내 모델사업으로 공동주방을 만드는 일이다. 부루스타와 밥통 하나로 취사를 해결하는 불편함을 덜고, ‘쪽방도 삶을 누리는 주거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 일에는 중앙대 실내환경디자인학과 학생들이 결합했다. 학생들은 졸업 프로젝트로 이 일을 추진하고, 기업과 서울시는 후원으로 힘을 보태기로 했다. 또 하나는, <건강세상네트워크>와 함께 주민건강실태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실태조사가 끝나면 건강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들어갈 것이다. 이외에도 재개발과 관련한 권리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빈곤문제는 의식주, 건강과 같이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물리적인 문제들 외에 차별과 낙인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들도 심각하다. 슈아는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평소 고민이 깊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고민을 가진 빈곤단체나 인권단체, 성 소수자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되었다.
슈아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동네를 함께 걸으며 그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도니 재미난 것 같지 않아요? 지루할 틈 없고.
저는 여기서 빈곤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은 접고 들어왔어요. 내가 아는 형들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우선이고요, 재미있는 일을 같이 도모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도 행복한 일이니까요.”
의외로 간단하고 시원하게 답하는 슈아, 그리고 <동자동사랑방>은 가난하게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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