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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人間/쓴 글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② 김지수 (당동청소년문화의집 관장)

by 제갈임주 2014. 3. 27.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② 김지수 (당동청소년문화의집 관장)

 

2012. 6. 7 

 정리 :  제갈임주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지역사회라는 공간은 이런 예상치 않은 만남과 나눔이 있는 곳이다. 오늘도 그 소중한 땅에서 아이들을 고민하면서 좋은 지역사람들과 마음을 나누었다. 힘이 난다. 함께 무언가를 궁리하고,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희망을 만들고 실현시키는지... 그 위력 맛보지 못하면 모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큰 힘을..."

 

학교 사회복지사들을 만나고 돌아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한 대목이다. 시간을 보니 밤11시48분, 그 날도 하루를 가득 채워 일하고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과 회의하고 서류를 챙기고 아이들을 만나고 강의를 하고 그 와중에 짬을 내어 책을 읽는다. 머릿속에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올까?

 

 


김지수 씨(당동 청소년문화의집 관장)는 군포통이다. 군포시민신문에서 시작해 군포시민의모임, 군포의제, 군포청소년수련관, 지금 있는 당동청소년문화의집(이하 문화의집)까지 15년 동안 줄곧 군포에서 일했다. 군포에 첫 발을 디딘 1997년에 이곳은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고등학교를 포기하는 학생이 많았고 구석구석에서 청소년 문제가 발생했지만 정작 청소년 운동의 영역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는 활동의 방향을 이쪽으로 정했다. 시민단체와 의제, 청소년수련관에서 청소년 문화․인권 활동을 두루 거치며 쌓은 경험이 바탕이 되어 지금 운영하는 문화의집은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곳이 되었다.  

2010년과 2011년, 문화의집에는 상이 쏟아졌다. 전국청소년문화의집 최우수시설로 선정되었고, 여성가족부로부터 2년 연속 청소년활동프로그램 공모사업의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상이 말해주지 않아도, 이 곳 문화의집 운영에 대해서는 이미 지역사회가 인정하고 있다.

 

당동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운영하는 몇 가지 프로그램을 소개해보자. 
<20분 산책>.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과 듣고 싶은 사람(청소년)이 있으면 된다. 서로 짝지어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하나같이 보인 반응은 20분이 짧다는 것이었다.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 70세 어르신, 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열세 명의 어른이 신청했고 150명의 청소년이 참여했다. 올해는 내용을 조금 바꾸어 <우리 동네 고수들과의 수다>를 벌일 생각이다. 꽃을 잘 가꾸는 아주머니, 큐브를 5분 만에 맞추는 청소년에게서 우리는 ‘어떻게 그 경지에 오르게 되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5백 원짜리 동전을 코에 넣을 수 있다면? 물론 이런 고수도 대환영이다. 보기 좋은 것, 그럴 듯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언제나 활동의 초점을 맞춘다.

<학술제>의 주제도 다양하다. '어렸을 때는 엄마와 나의 관계가 좋았는데 왜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나빠질까?', '자유투를 어느 각도에서 넣을 때 성공률이 높을까?' 청소년이 논문 형식에 맞춰 쓸 수 있도록 이 동네 사는 교수가 직접 지도한다. 부모님을 초청해 발표회를 하고, 1등․2등이 아닌 ‘노벨평화상’ 같은 거창한 이름으로 상장을 수여한다. 상장에는 발표자 장래희망의 모습이 담긴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다.

<청소년 참여예산제>도 소개할 만한 사업이다. 지자체 지원 사업비의 20퍼센트는 항상 참여예산 사업비로 확보해 둔다. 올해 군포시로부터 받은 사업비 예산이 3천2백만 원이니 참여예산 사업비로는 650만 원이 책정된 셈이다. 1년에 네다섯 차례에 걸쳐 신청을 받는데, 혼자 또는 여럿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50만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사업비를 신청할 수 있다. 이 때 필요한 서류는 아이템 기획서 한 장이다. 한 장짜리 기획서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담기겠는가? 모자란 부분은 참여예산 심의위원회가 질문을 하며 보완하고 발표와 워크숍을 거쳐 세부안을 같이 짠다. 이 과정을 통해 청소년이 하고자 하는 일을 실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1년 내내 진행되는 활동을 묶어 한 차례 마을 큰 잔치를 연다. 군포중학교, 지역아동센터, 아시아의 창 등 지역의 여러 기관과 연합하여 준비하지만 전체 기획과 예산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 신청 및 자잘한 뒷수발은 문화의집 몫이다. 재작년에는 3일, 작년에는 9일간 진행했다. 마을잔치로 장관상까지 받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보여주기 식의 엄청난 행사를 하는 건 아니다.

<골목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보자. 두 명의 청소년이 어느 골목에 가서 연주를 하기로 했다고 치자. 그럼 가서 10분 동안 연주하고 오는 것이다. 교사들은 종종 걱정을 한다. “비가 오는데 어떡하지요? 듣는 사람이 없을 텐데요.” 듣는 사람이 있든 없든 교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결정하면 그대로 하면 된다. 약속한 일에 펑크를 낸다면? 그것 역시 교사가 동동거릴 일이 아니다. 미안해하면서 느끼는 바가 있을 테니 말이다. 관장으로서 김지수 씨가 교사에게 바라는 점은 아이들의 뒷수발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켜봐 주는 일이다.
작년에는 9일간 열리는 축제기간에 <라디오카페>를 운영했다. 저녁 두 시간 동안 문화의집 공간을 카페로 개방하는데 어느 날은 라디오에서처럼 사연을 받고, 어떤 날엔 문화카페로 변신하여 테이블 토론을 하며, 또 다른 날에는 다목적 홀에 사이키 조명을 넣어 춤 배틀대회를 열어 그 날 그 날 특색 있게 운영했다. 주변에는 부모가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시간까지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축제 기간에는 밤 10시까지 운영하니 초등학생들이 특히 좋아했다.

밥을 굶는 친구들도 많아 <식판을 벌이자>는 이름으로 레스토랑을 열기도 했다. 테이블에 꽃을 꽂고, 식탁보를 사서 깔고, 푸드뱅크에 연결해서 100인분의 식사를 지원받았다.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보자고 차린 이 자리에 사람이 넘치지는 않았는지 묻자, 먹을 만큼 모였다고 한다. 

 

문화의집은 청소년수련관과 달리 수익사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예산이 적기는 하지만 덩치 큰 수련관보다는 아담한 문화의집이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 지역에는 더 적합하다. 지자체에서는 사업비 충당을 위해 시설이용료를 받으라고 권유하지만 이곳은 무료이용을 고수하고 있다. 당동청소년문화의집의 경우에는 1년 예산이 1억9천8백만 원. 인건비와 시설운영비 같은 고정비를 제외하면 3천여만 원의 사업비가 남는다. 다른 문화의집은 보통 지자체 예산에 프로젝트 하나 정도 추가하지만, 이곳에서는 1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외부 프로젝트 사업 신청을 통해 마련한다.

 

예산이 많은 만큼 일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프로젝트를 받을 때는 돈뿐만 아니라 일할 사람도 함께 지원 받는다. 행정업무를 최소화하는 방법도 항상 신경을 쓴다. 참여예산이든 동아리든 교사가 따로 계획서를 쓰지 않고, 아이들이 작성한 기획서 앞에 내부결재 서류 한 장만 붙이도록 한다. 교사가 직접 쓰는 계획서는 교육 프로그램 정도이다. 

관의 지원을 받지 않고 개인 후원에 의존하면서 열악한 조건에서 운영해야 하는 민간 청소년 시설의 눈으로 본다면 문화의집이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김지수 씨는 이에 대해 “예산도 있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지만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도 많다.”고 했다.

예컨대 운영 시간 조정이 불가능하다. 청소년의 생활을 고려한다면 오후부터 저녁까지 개방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근무시간까지 유연하게 정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이 당직 형태로 번갈아 가며 9시까지 개방하고 있다.
예산을 사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참여예산 사업비의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직접 지급되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과 실패의 가능성이 따른다. 이 모든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될 테지만, 그런 식의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쓰려는 항목이 물품이면 자산취득비가 되고, 그러다 사고라도 치면 환수조치를 당하고 교사들은 시말서를 써야 한다. 그 위험부담을 안고 누가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시스템 아래 있다 보니 교사들의 사고도 경직되기가 쉽다. 자기 업무 외에는 하기 싫어하고 변화를 부담스러워 한다. 한번 해보자고 의기투합이 되면 되건 안 되건 해보는 시민단체 활동이 부럽기도 한 지점이다.
 

이런 한계들을 경험해서인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건 바람직하지만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지수 씨는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민간 시설을 꿈꾸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도전해 보라고 쉽게 말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는 얼마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지 되묻는 김 씨는 몇 개월 후에 있을 예비사회적기업 공모에 도전할 생각이다. 재활용 제품생산과 생태교육을 묶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동안 20대 청년들과 함께 준비해왔다. 지역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 형태의 시민작업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사람들의 뜻을 모으고 기업의 지원을 끌어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수없이 많지만 이미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김지수 씨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

 

"가진 것 없는 애들이라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배우고, 그것으로 지역을 떠나지 않으면서 다만 몇 명이라도 굶어죽지 않을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것이고, 그것에 도전하는 거예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마냥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도 답이 아니잖아요. 여기서 잘 자란 아이들이 이곳에서 일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 그럴 때 지역이 더 건강해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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