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에 녹지대 사람들을 만났다. 몇 년만의 만남인지..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 병희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하고서는 그만 멈칫 했다.
나를 누구라 말해야 할 지 순간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하마터면 시냇물이라고 할 뻔 했다.
시냇물.. 민서엄마..
동네에서 늘 듣는 호칭들에 익숙해져 정작 내 이름이 낯설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나란 사람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누구 엄마, 어디 선생님, 어느 모임의 누구. 이런 거 말고 그냥 임주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봄날 하늘하늘한 치마 나풀거리며 철없이 나들이 가는 소녀마냥 기분이 즐거워졌다.
"등원의보 편집국 녹지대"
80년대 중반, 의과대학 내 부정입학 문제를 폭로하면서 선배들이 만들었던 단대 신문사다.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던 나는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건물 꼭대기층에 있는 녹지대 방문을 두드렸다. 그 때 동아리방에서 나를 맞았던 사람이 병희선배다.
내가 처음 맡았던 글은 가벼운 건강상식에 관한 기사였다.
아무런 개념도 없었던 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한 꼭지를 따다가 내 생각을 대충 보태 글을 써 갔다.
그 때 선배들의 어이 없어하던 표정이란..ㅎㅎ
그 후 몇 년간 녹지대인들과의 진한 동거는 계속되었고,
그들을 통해 나는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을 배우기 시작했다.
존경하던 선배 동기 후배들이 지금은 의사, 간호사가 되었다. 의사가 된 이들은 연봉이 아닌, 월급 천 만원 이상의 고소득자가 되었다. 멀건 순대국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던 그 때의 형편과는 많이들 달라졌을 것이다.
예전처럼 사회문제가 더 이상 우리의 안주거리가 되지는 못했다. 학교를 인수한 두산그룹의 요즘 행태에 대해서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너무 오랜만에 만났고 너무 반가웠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서운하지는 않았다. 다들.. 여전히 따뜻했기 때문이다.
동료 세 명과 함께 부산에서 병원을 차린 병희 선배는 권위적인 병원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 스턴트맨을 초월하는 개인의 무용담과 병원 내에서 직원들과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여러 에피소드를 들으며 진짜 내공은 저런 데 있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지금 내 삶의 모습의 뿌리는 내가 거쳐 온 모든 시간과 사람들 속에 있다.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씨앗이 되었는지 모르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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