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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人/끄적끄적

차라리 내 마음을 비우지

by 제갈임주 2010. 7. 7.

선거가 끝나고 일을 놓은 지 2주가 지났다.
일없이 지내는 처음 며칠은 불안하고 예민하더니,
곧 익숙해져 한가로운 일상을 맘껏 즐기고 있다.

아이들과 뒹굴며 영화 보고, 간식 먹고,
도서관에서 딸아이와 함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저녁까지 만화책을 본다.
언제나 수다스러운 아들 녀석의 시시콜콜한 학교 일들을 들으며, 새로 익힌 저만의 춤과 무술의 기량을 보며 깔깔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잠시 꿀맛같은 '낮잠'에 빠져든다. 
엄마가 책 읽어주는 시간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아들에게는 밤마다 책을 읽어주며 재운다.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참으로 호사스런 생활이다.

그동안 얼마나 껍데기같은 엄마였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아이들과 같이 지내면서 늘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그동안 바깥일만 신경쓰느라 아이들의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제 할 일이 없으니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유롭고, 자기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할 줄 알고, 마음씨 고운 내 아이들이 마냥 기특하기만 한데,
문득, 시험과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중학생 딸아이를 볼 때,
날마다 나머지 공부하는 아들녀석, 공부 좀 시키라는 담임선생님의 특별문자를 받을 때,
마음이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맘잡고 가르치면 성적하나 못올리겠냐마는, 
문제는 부모 말을 고분고분 따를 녀석들이 아니다.  
작은 아이는 이미 3학년 때 엄마의 역할이 무엇인지 깔끔하게 세 가지로 정리해 주었다.
"밥 해주고, 간식 해주고(먹을 건 엄청 챙긴다). 물어보는 숙제만 가르쳐주면 돼요!"

아이들은 이미 내 손을 떠나 있다. 밥투정이나 청소 같은 일은 때때로 회초리를 들어 윽박지르는 게 통하지만, 공부는 억지로 시킬 수가 없다. 비록 꼴찌를 할 지언정 여전히 똑똑한 내 아이들에겐 공부는 엄마가 간섭할 일이 아닌 자기들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도, 엄마의 미련과 걱정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재밌게 가르치면 따라오지 않을까 싶어 문제집을 펼친다.
문장을 조각조각 잘라놓은 국어,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외워야 하는 과학과 사회,
초등학생에겐 과하게만 느껴지는 영어 문제를 보며 슬그머니 책을 덮는다. 

대신 내 책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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