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自由人/마음따라 가는 길

체불임금 받아내기 <2편>

by 제갈임주 2023. 5. 25.

회사의 계약내용과 행태는 근로기준법 위반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따른다면,

#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전액을” 지급해야 합니다(제43조)
# 임금은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일부를 공제하거나 현금 이외에 다른 것으로 지급할 수 없고요(제43조).
# 특히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체결은 금지된 행위이며(제20조)
# 회사에 갚아야 할 돈을 임금에서 제하는 일도 금지돼 있었습니다(제21조).
 
그러나 문제는,
텔레마케터들이 근로계약서 대신 ‘프리랜서 위임계약서’를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회사는 직원들을 근로자(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 개인사업자의 지위로 만들어, 근로기준법을 피해갈 수 있도록 꼼수를 쓴 거지요.
실제로는 직원 업무에 대해 회사가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다 행사하면서 말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법적으로 다툰다면 프리랜서의 ‘근로자성’을 당사자가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어쨌든 내용상 불법으로 판단되니 이것으로 회사를 압박해보기로 했습니다.
 
 
정장을 차려입고, 돋보기 대신 테가 날카로운 안경을 챙겨 쓴 후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아주 상쾌하더군요. 왠지 일이 잘 될 것 같았어요. 법률 조항 다 외웠고, <근로기준법>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까지 의심되는 상황이고..
 
계약내용・업무내용은 물론 회사에 대한 어떤 정보도 누출할 수 없고 심지어 공공기관에까지 진정을 넣을 수 없도록, 3천만 원 배상 조항으로 묶어 직원들을 볼모 삼은 것은 그만큼 숨길 게 많다는 뜻이니. 이 내용을 다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압박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오피스텔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회사가 있는 층에 내렸습니다. 다행히 사무실 문이 활짝 열려 있더군요. 스무 평 되는 사무실에는 20-30명의 텔레마케터들이 가림막으로 구분된 각자의 공간에 얼굴을 묻고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선 낯선 침입자가 입구에서 안쪽 끝까지 걸어 들어가는 데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상황이었어요.
 
저를 발견한 팀장은 교육실로 들어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팀장의 주장은 하나였습니다. 자신들은 계약대로 했다는 거에요. 제가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의 부당함과 법적 문제가 무엇인지 조목조목 이야기했지만, 딸이 말한 대로 팀장은 꿈쩍도 않더군요.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하든, 고발을 하든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듣고 그냥 나오기에는 아침의 그 호기로움이 떠올라 참 민망했습니다.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직원들에게 들리도록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엉터리 계약으로 월급 떼어먹고, 직원들 묶어놓는 게 말이 돼?
전화번호를 팔다니, 번호 주인들한테 동의는 받은 거예요?
이런 계약들 불법인 거 여기 사람들 알아요?”
 
그러자 직원들이 웅성웅성 하나 둘 고개를 돌려 저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팀장은 당황해 황급히 저를 문 쪽으로 끌고 나갔지요.
 
저는 팀장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은 권한도 없고 책임질 위치도 아니고, 결국 감옥에 가든 벌금을 내든 책임져야 할 사람은 대표가 될 테니 오늘 중으로 대표에게 제 말을 분명히 전해 주세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 법적이든 다른 방법이든 필요한 모든 대응을 할 거라고. 그리고 동시에 여기 계신 분들도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내일부터라도 행동에 나설 거라고요.”
 
그러고 나오니 다리에 힘이 풀리더군요.
역시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3편 계속>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