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걸 기대한 게 아니었는데.
성과 없이 집으로 가기가 허탈해 일단 길거리 벤치에 앉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까지 30분. ‘그래, <고용노동청>에 질의까지만 하고 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노무사가 설명해준 절차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노동지청에 진정서를 작성・접수하면 2-3일 후 근로감독관이 배정된다.
- 보통 1~2주 후 감독관의 연락과 조사를 받게 되는데. 감독관은 근로자 한쪽의 말만 들을 수는 없다(아니 누가 뭐라나?).
- 회사 측의 입장도 듣고 결론을 내리는데, 기간은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이 걸릴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리랜서 위임계약서’를 썼다면 근로자로 인정받기 힘들 거란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조사하기도 전에 결과를 부정적으로 예견하는 노무사가 답답해 말했습니다. “실제 업무를 보면 ‘근로자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어요, 프리랜서지만 근로자로 인정한 최근 판례도 늘어나고 있잖아요?”하고 물으니, 노무사는 “그렇죠. 그러면 진정서에 근로자성을 판단해 달라는 내용도 써주세요”라고 하더군요.
통화를 하면서 느낀 건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될 답답함이었습니다.
진정서를 스스로 ‘작성’하는 일이 쉬울까요?
근로자성을 입증하는 일은 간단할까요?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처음부터 증거를 수집하고 녹음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성공한다고 해도 돈을 받기까지 두 달이 걸린다는데 그동안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근로자성을 입증하는 일은 간단할까요?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처음부터 증거를 수집하고 녹음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성공한다고 해도 돈을 받기까지 두 달이 걸린다는데 그동안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가 생각났습니다. 먹지 못할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고는 실컷 먹으라고 하는 것이 우리 사회 정책들이었구나 하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ㅇㅇ야, 쉽지가 않네. 좀 길게 보고 진정 절차를 거쳐야겠어.” 했더니, “거봐. 내가 말했잖아. 난 기대도 안 했어. 엄마가 이렇게까지 해준 것만 해도 고마워.” 하고 웃으며 대답합니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참 많네요. 저희 딸과 같은 일을, 아니 그보다 스트레스가 더 심한 통신사 ‘해지방어 업무’를 하다 저수지에 몸을 던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건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영화로 만든 것이 <다음 소희>라는 사실도 알게 됐지요.
씁쓸한 마음을 쓸어내리고 있던 늦은 오후 연락이 왔습니다. 오전에 이야기 나눈 팀장이었어요.
“일단은 오전에 주신 내용 대표님께 잘 전달해 드렸고요. 다행인 소식은, 대표님께서 보수는 내일까지 입금을 다 해드리고 db비용은 따로 청구하지 않으실 거라고 답변을 주셨습니다. 오전에는 저희가 관행적으로 말씀드린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라며 오전과 사뭇 다른 답을 주더군요.
다음날 퇴근 시간을 막 넘긴 시각에 입금됐다는 카톡을 딸에게서 받았습니다. 제 자식만 구제한 것이 미안해서였을까요? 기분이 그리 개운하진 않았습니다.
자기 목에 칼이 겨누어져야 움직이는 사람들, 소리 내지 않는 이들에겐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아는 야만의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여린 한숨이 어느 때보다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이번 일을 거치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 꿈도 하나 얻었습니다.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겠지만..
말할 곳 기댈 곳 없어 막막한 젊은이들에게 좋은 어른, 든든한 언니가 되고 싶다는 꿈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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