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엄마, 나 바람 좀 쐬고 싶어. 어디 탁 트인 데 가서 하루라도 놀고 오면 좋겠어.”
부부는 오랜만에 딸을 데리고 서울 근교로 나가 밥을 먹고, 예쁘고 마당 넓은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고, 또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딸네 집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딸이 그제야 마음 속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 놓습니다.
“엄마, 나 지금 회사 너무 다니기 싫어”
최근 집을 옮기면서 새 아르바이트를 구했는데, 이게 말로만 듣던 텔레마케팅이었습니다. 하루 4시간 일하면 12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일을 시작한 거죠.
회사가 제공하는 불특정다수 기업 대표들의 핸드폰 번호를 받아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회사가 취급하는 업무의 대행・위탁을 성사시키면 건당 7,500원씩 받는 일이었습니다.
기본급도 없고 성공률도 낮아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내 전화번호를 어디서 알았냐?”는 항의에 대응하는 일부터 시작해 자기 회사가 마치 공공기관인 것처럼 착각하게 교묘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매일 비난과 욕설을 받아내고, 한편으로는 남을 속이는 일이라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회사가 준 매뉴얼대로 앵무새처럼 거짓말을 반복해야 했던 딸은 자기도 모르게 우울의 늪으로 빠져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일을 멈추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근무기간 3개월을 채우지 못하면 제공받았던 db(전화번호) 비용을 물어내야 한다는 계약내용 때문이었지요. 한 달 반 근무하면서 받을 임금이 87만원인데, 물어야 할 금액이 260만원이라니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수밖에요.
게다가 4월 임금도 5월 말일에야 지급되는 판이라, 아무런 수입 없이 버틸 수 없었던 딸은 새벽에는 영화관 청소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그래도 좀 더 버텨보겠다고 하더니 드디어 마음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난 월요일 출근해 팀장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지요. 팀장은 3개월 근무를 채울 것을 설득하더니 딸의 의사가 바뀌지 않자 월급은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그 자리에서 계약해지를 통보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눈물이 나올 줄은 몰랐다며 수화기 너머로 엉엉 우는 딸아이를 다독거리던 저는 왠지 모를 힘이 불끈 솟아남을 느꼈습니다.
'내 이 자식들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아니지, 할 일도 많은데 너무 일을 크게 벌이진 말자. 그냥 소박하게 월급이나 받아내 볼까?'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펼쳐 보기 시작했습니다.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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