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동네정치 고수들의 가볍지만 진중한 수다
“지방선거 참여를 통한 풀뿌리 지역정치, 다시 이야기하다”
정리 : 제갈임주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 일시 및 장소 : 2013년 5월 7일(화) / 씽크카페 카페더웨이
○ 주최 :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 후원 : 한국여성재단
○ 사회 : 김은희 (여세연 대표)
<이야기손님>
▮ 김혜련 : 2002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고양시의원에 출마 전국최연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그녀, 2010년 다시 고양시의원이 되어 초록정치 좋은정치를 꿈꾼다.
▮ 백혜영 : 2002년 구로구의회에서 유일한 여성의원으로 동네도서관과 보육문제에 발품 팔아온 그녀, 의회를 벗어난 지금 (사)마을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 이현주 : 여세연 창립멤버로 2002년 여성단체후보로 양천구의원에 당선되었다. 2006년 무소속으로 선거에 도전했고, 지금은 지역아동센터 ‘나무와 숲’ 공동대표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다.
▮ 장현자 : 젊은 시절 여성노동운동과 빈민운동에 참여했다. 대전 지역활동가로 2002년 선거에 도전해 서구의원으로 당선 대전에서 유일하게 ‘보육조례’를 통과시켰고, 여전히 지역활동가이다.
▮ 최순영 : 70년대 YH노조의 여성 노동자는 부천을 누비며 지역활동가로 지방의원으로 일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다시 부천에서 학교급식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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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활동을 하면서 지역운동이나 시민단체와의 관계는 어떠했나?
아쉬운 점, 도움이 되었던 점, 지속적으로 함께 갈 수 있는지 여부 등
▷ 동네에는 지역 환경련이 없었고 중앙 환경련은 지역 의제에 개입하기도 쉽지 않아 딱히 환경연합과 관계를 잘 맺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위 사람은 쟤는 환경후보, 녹색후보라 생각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지역구 절반 가까이가 그린벨트 지역인데-환경련과 그린벨트는 아귀가 잘 안 맞는다.- 그린벨트를 풀어달라는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40년 넘게 집도 못 고치고 재산권 행사도 할 수 없다. 도시가스도 안 들어가, 케이블 방송도 안 들어가 따지고 보면 그 사람들 삶도 고통이다. 그린벨트지역 주민의 삶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공약도 필요한데 지난 총선 때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정책 담당하던 선배가 “너는 환경연합 출신인데 왜 그러냐?”고 하더라. 그런 동네는 도로도 엉망이라 주민들은 비포장도로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시장 만나면 매번 여기 도로 놓아야 한다는 얘기들.. 아, 이게 도대체 뭘까, 요즘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 이제 내가 녹색당으로 간다면 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벽제 화장장과 시립묘지 가는 길은 50년 동안 그대로여서, 그 동네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많다. 이런 동네에서 도대체 자치운동과 시민운동, 환경운동이 어느 지점에서 가능할까. 어쩌면 나는 편한 지점에서 그런 부분들을 관념적으로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시민운동과 현실정치가 결합할 수 있는 동네가 굉장히 한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렵다.
▷ 내가 속했던 구로시민센터의 역량은 굉장히 컸고, 나는 그 힘으로 선거에 당선되었다. 의원은 정보접근성이 빠르고 정보량이 많지만 나름의 일정이 있다 보니 매번 단체 회원과 공유하고 정책과 방향을 내올 수 있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나름대로 의정활동은 즐겁게 했는데, 도리어 시민사회단체에서 기존에 맡았던 의정감시나 시장을 견제하던 역할은 다소 다운이 됐다. 그것은 단체회원들이 선거에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부었기 때문에 지친 면도 있었고, 또 의원을 내보내면 대신 할 거라는 대리정치의 기대심리도 일어났던 것. 나로서는 그것이 힘겹고 부담스러웠고, 내 활동이 단체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서로의 기능이 분화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단체에서 (의원의 활동을) 따라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한 무더기의 어떤 시스템이나 조직이 있었으면 유리했을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의원 하나를 내보내면 의원과 함께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든가 아니면 기존의 의정감시단이나 지방자치위원회 같은 구조가 조직화되어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 것 같다.
의정보고 한 번도 제대로 못하겠더라. 너무 바쁘고 여유 없이 지냈고, 겨우 두 번 정도 단체 회원들과 함께 했다. 물론 만날 기회는 많으니까 수시로 보고는 하지만 간극이 많이 느껴졌다. 내가 갖고 있던 정보나 활동에 대해 단체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달라 보고 정도지, 공유되고 공감되고 거기서 뭔가가 나오는 경험은 하지 못한 것 같다.
■ 선거가 끝나면 의원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의회 안에서도 소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은데 몸담고 있던 단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예 정당처럼 조직화된 가나가와 네트워크가 부럽기도 한데... 단체와 의원은 일상적인 소통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 나는 남서여성민우회에서 나갔는데 되고 나서는 버려진 느낌이 강했다. 내가 단체에 뭔가를 요구했을 때 그것을 해주기에는 사람들은 단체 일로 늘 바빴고, 또 의원이랍시고 자꾸 뭔가 요구하면 짜증이 나지 않나. ‘그냥 알아서 할 것이지’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단체에서 의원을 출마시킬 때에는 그저 의원 하나를 만들려고 한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의원을 통해서 뭔가 하고자 함이었는데 당선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는 생각을 깊이 하지 못했던 것 같고, 그래서 한계도 많았다.
▷ 시민사회도 의제발굴이나 시스템 등이 미숙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주민과 함께 하는 토론회나 공청회나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제안을 받아보지 못했고 저 역시도 제안하지 못했다.
▷ 의회에서는 타협도 하고 합의도 해야 하는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단체로부터 비난이 쏟아진다. 특히 위원장을 할 때에는 목숨 걸고 반대해야 될 사안이 아니면 상임위 의원들이 결정한 것을 대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 “왜 쟤는 저런 결정을 하냐?” “쟤 좀 변했다”는 말을 듣게 되더라.
■ 기초 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광역이나 국회 차원에서도 운동과 정치가 결합되는 게 어려운가?
▷ 내 경우에는 지방선거가 시작된 91년도에 부패한 정치를 풀뿌리 지방정치에서부터 변화시켜보자는 목적으로 출마했다. 주민이 참여하는 신나는 잔치로 만들자 해서 모금하고 선거운동하고 재미있게 해 냈다. 그런데 덤으로 당선까지 된 거다. 의회 첫 개원하는 날 주부들이 한복입고 찾아와 꽃도 주고 축하해 주니 의원들도 굉장히 좋아했다. 다음에는 의정지기단 만들고 결국은 부천의 담배자판기철거운동을 해냈고, 그래서 전국을 바꿔냈다. 그 힘을 이어 학교급식운동까지 계속 했고. 그래서 나는 의원활동 하면서 정말 신났다. 아까 다른 분들이 굉장히 어렵다고 했는데 잘 되짚어봐야 할 것 같다.
국회를 가보니까 정말 정치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치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정말 필요한 법안을 엿 바꿔먹지 않고 통과시키는 것, 당사자들을 뒷받침하고 그들의 절절한 마음을 받아 진정한 대리인 노릇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국회와 지방의회 활동을 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 가나가와 네트워크에 미쳐 세 번을 갔는데, 일본의 여러 (가나가와와 같은) 네트워크들이 중앙정치를 하느냐 마느냐 한때 논란이 있었다. 동경네트는 민주당 후보를 중앙으로 보냈는데 결국은 역할을 못한 반면 가나가와 네트는 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일본의 정치가 연방제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지역을 굳건히 하는데 힘을 쏟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곳에서는 토론회를 할 때 지역에 예쁜 포스터를 붙이는데..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잘 안 온다. 어떨 때는 한 사람이 올 때도 있다. 그래도 그 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과 함께 정책 토론회를 하는 모습을 인상깊에 보았다.
■ 단체에서 밀어 의원을 만든 경우에는 의원에 대한 평가가 단체에 대한 평가로 직결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부담을 단체가 지기도 하는데.. 조직과 의원이 하나가 되는 방식이 가능할까? 그게 바로 정당일 텐데 각자의 배경이 되는 단체는 정당과 결합되는 메커니즘과 어떻게 달랐나?
▷ 주민의 대표지 단체 대표로 의원이 된 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단체와는 충돌할 수밖에 없고, 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단체에는 자신의 욕망과 이해, 요구가 있고, 그것이 동네 주민들을 다 대변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다른 일이 생길 때에는 그 단체의 목소리이고 입장이기 때문에 비판을 감내하고 가야한다. 내가 볼 때에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단체에서 선거 때 많이 도와주고 정책적 결정을 함께 했더라도 실제적으로 시민단체의 역량이 너무 적다. 일단 뽑아놨으면 끝나는 거지 예를 들어서 부탁을 해도 그걸 해줄 수 있는 여력이 없질 않나. 의원은 주민의 대표로서 해야 하는 역할이 우선이다.
우리 동네 공원에 골프장을 만들려고 해서 구청장과 싸운 적이 있다. 의원의 장점은 정보를 빨리 얻는 것인데 내가 정보를 제공하고 환경단체들과 연대해 골프장을 막아내고 생태공원을 만들었다. 의원은 의정질문을 통해 문제를 지적하고, 단체는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앞뒤에서 쳐 주니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일반적인 구정의 문제를 시민단체와 손잡고 일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 가나가와 네트도 처음 데라다 아쓰코가 나올 때에는 네트워크 조직을 생협과 별도로 조직했던 것처럼 단체와도 그런 게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저도 처음에 민우회랑 했지만, 활동할 때 기반이 되었던 모임은 한 동의 마을만들기 주민모임이었다. 한 달에 한번 활동을 보고하고 수다떨고 놀면서 스트레스 받았던 것도 풀었다. 그 사람들과 어린이 마을학교를 놀토마다 격주로 할 수 있었고, 많은 도움이 됐다. 단체와 관계를 맺는다면 단체 중에서 정치 활동에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들의 조직을 만들면 가능하지 않을까. 저희 지역 중에 많은 분들이 녹색당원인데 그 분들과 여러 단체 활동으로 많이 만난다. 그렇지만 아직 당원 활동이 일상적이지는 않기에 언젠가는 녹색당원의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활동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라고, 그런 연결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 제가 볼 때 현존하는 최고의 정당은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자기 색깔이 확실하다. 모든 사안에 대해 자기 당의 통일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그렇다고 그걸 배우자는 건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거의 아사리판이다. 어떤 의원은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고, 정당정치가 제대로 구현된다고 볼 수 없는 정도다. 당은 단체와 굉장히 다르다. 당을 통해 실제로 어떤 일을 해보자, 시정을 우리 당 정책에 맞게 바꿔보자는 것보다는 계속 다음 선거, 그 다음 선거에 관심과 초점이 갈 수밖에 없다. (아주 잘 봤네.) 2012년 겨울부터도 모든 의정활동의 중심이 총선으로 넘어가더라. 저 같은 경우는 실제로 시민 삶이 바뀌게 하는 조례나 예산에 대해-그런 걸 위해서는 새누리당과도 같이 할 수 있죠.- 오직 관심이 있는데 당으로 돌아오면 지금부터 “내년에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계속 받는다. 내년 선거 제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런 것들이 너무 피곤하다.
▷ 거기에 덧붙여 당과 단체의 차이점을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당 생활을 오래했다. 한 10년 했을 거다. 처음 단체 활동을 하면서는 당에 들어가지 않다가 민주노동당의 많은 여성과 선배들의 권유로 입당을 했는데, 그 때 생각은 여성들이 많이 들어가서 지역의 풀뿌리 운동과 같은 새로운 정치를 향해 가면 좋겠다는 바램이었다.
정당에 들어가니 회의가 오후 6시에 시작돼서 그 이튿날 6시에 끝나, 12시간을 중앙의 문제로 논의하는데 아주 지겨워 죽겠는 거야. 그런데 저 놈이 왜 저 소리를 하나 하고 가만히 지켜보면 자기 정파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 때문이더라고. 아무리 진보정당이라 해도 별 차이가 없다. 당원들의 마음은 순수하지만 정당은 권력을 쟁취하려는 속성이 있고 그 권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권력과는 차원이 다른 거다. 나는 사람들이 단체 활동하다가 정당에 쑥쑥 들어가는데 그러면 끝이라고 본다.
내가 전국을 다니면서 여성 의원들을 교육하고 조직하고 풀뿌리 운동 사례를 이야기해 당원들은 나를 재미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정파가 없는데도 당내 선거에서 표를 제일 많이 받아 부대표를 했다. 하지만 풀뿌리운동과 같은 방식이 정당에 뿌리내리긴 참 어렵더라. 의원이 목적이냐? 당이 수단이냐? 나는 한국사회에서 지금의 당은 수단이 되기도 참 어렵다고 본다. 우리처럼 정당도 하고 단체활동도 해본 사람들이 다 꺼내놓고 토론해서 이 속이 얼마나 썩어 있는지 나와야 한다고 본다.
정당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요즘 녹색당에 관심이 간다. 저 당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고 저걸 어떻게 살려서 가져갈지 생각도 해보게 된다.
▷ 민주당을 탈당해 나왔지만 그곳에 3년간 있으면서는 정말 순진한 마음으로 여성 당원들을 교육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내가 시민운동을 했던 것처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여성위원장을 맡았다. 막상 들어가 보니 정당이라는 것이 시민단체보다도 못하더라. 조직이고 운영방식이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었다. 처음 여성 당원들을 찾아서 교육하려 하니 지역위원장들이 여성위원을 숨기고 전혀 내놓지를 않았다. 지역명단은 있지만 자기가 알고 만나는 사람들을 완전히 독점한다. 그 사람들은 지역위원장 말만 순응하지 여성위원장 말에는 전혀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원장이 패권을 쥐고 있으니 괜히 밉보이면 내쳐버리니까. 그러니 나중에 비례대표라도 하나씩 받으려는 사람들, 뭔가 이권을 바라는 사람들이 열심을 내더라.
지방자치 선거 때도 공천비리, 적나라하게 봤다. 대전은 당의 한 상무위원이 비례대표 후보에 자기 마누라를 앉혔다. 4년 동안 열심히 일했던 위원이 출마하려고 하니 그 사람 밀치고 봉투 주는 사람을 앉혀 버리고. 이건 대전뿐만이 아니다. (맞아, 그래, 그럼) 지역위원장을 여성이 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원외 위원장은 공천이라도 받으려고 현역 의원들에게 절절 긴다. 중앙은 더하겠지. 절대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진보정당도 민주당, 새누리당도 똑같다. 내가 썩는 것을 너무너무 봐서.. 우리처럼 곱게,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시민운동을 하듯이 일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3년 동안 그 힘을 들여서 실질적인 사회운동을 했으면 오히려 뭐 하나라도 열매 맺는 기반이 되지 않았겠나. 지금은 그 정치 안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올라설 수 없는 구조, 시민단체와 정당은 하늘땅 만큼의 차이다. 알고서는 못한다.
■ 얼마 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담회를 다녀왔다. 거기 나온 국회의원들은 당을 막론하고 정당공천제가 있어야 여성의원의 할당제를 그나마 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게 맞는 말 같은데 이에 대해 기초의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정당공천제 말이 나왔으니 얘길 좀 하겠다.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정당공천제는 절대 폐지되지 않을 거다. 그건 진보정의당도 같은 생각일 거다. 또 하나 지방의원들? 정당폐지 안 되길 바란다. 우리 ‘여성지방의원네트워크’도 그렇고 여성단체도 일부 반대한다. 30프로 여성 할당 때문인데 이게 완전히 쥐약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아무리 여성이 들어간들 무슨 역할을 하겠나. 소용없다. 그럼 지방의원들은 왜 그러냐? 이미 정치란 건 권력이다. 지방의원도 어떻든 간에 권력이다. 솔직히 말해 이 권력은 맛 들이면 떼어놓기 싫다. 그래서 아편과도 같다는 말이다. 그건 나도 경험을 했고 의원 해본 사람은 다 느낄 거다.
그래서 이 권력을 어떻게 놓는가가 중요한데, 내가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시민, 국민이 어떻게 권력을 쥐게 할 거냐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또, 여성할당제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지적해야 한다. 30프로 여성할당은 당근이다. 이 30프로를 포기할 건지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길게 보면 정당 정치로 가야 하나 지금 한국 정치는 많은 부패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지방의회 공천은 폐지하는 게 맞고 이 시점에서 여성 할당제를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 2002년에 풀뿌리 생활정치하던 사람들의 진출은 소선구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6년 전멸한 건 중선거구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정당공천제와 상관없다. 소선구제에서 잘만 조직한다면 당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본다.
▷ 정당공천제와 중선거구제로 인해 선거에 나온 풀뿌리 활동가들이 다 죽었다. 정당공천제는 능력은 관계없이 돈과 충성도밖에 안 본다. 하수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선거구제는 보통 4-5개의 동을 커버하고 인구 단위는 10만 정도 되는데 풀뿌리 조직은 한 동, 몇만 인구 단위이다. 소선거구제에서는 한 동네 조직이 얼마든지 가능한 반면 중선거구제는 돈도 많이 든다. 그러니까 선거에 생활정치의 다양한 선수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소선거구제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 정치의 과제는 정당공천제를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 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할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정치가 어떻게 달라져냐 하나, 이뤄야 할 가치가 있다면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녹색당 분들 만나면 주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정당공천제나 할당제 등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겠다는 예측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예를 들면 총선에서 비례대표는 더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선거에서부터 정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만약 제도를 바꾼다면 우리가 어떤 제도를 요구할지 5년, 10년 후 정치의 어떤 부분이 달라지기를 바라는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선거 당선 중심의 사고방식을 벗지 않으면 변화도, 희망도 없을 것 같다.
▷ 차라리 지역구 없이 대선거구제에 당 명부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소선거구, 중선거구 다 해보니 중․대선거구가 주민과의 친화력은 떨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의원에 대한 주민의 기대심리가 낮아져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할 부담 없이 정책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정당공천제가 없는 중선거구제가 최악이다. 그러면 기존에 시의원 하던 양반들이 자기 표 2천 표 가지고 주구장창 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
영호남 경우는 한 당에 몰빵하기 때문에 의원들 수준이 거기서 거기고 돈 주고 받아먹고 하는데 최소한 수도권은 의원의 질을 담보하지 않으면 어렵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공천을 하냐 싶으면 그 동네는 틀림없다. 표가 안 나온다. 수도권은 일정정도 장점이 있는데, 영호남은 정당공천제의 장점이 전혀 발휘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정치는 전국을 바라보고 하기 때문에. 차라리 국회의원 선거, 시의원 선거에 당별 명부를 내는 편이 낳은 것 같다.
■ 정당공천제 폐지가 국회에서 통과되기 쉽지 않을 거라 말씀하셨는데 저희도 작년 연말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국회 분위기는 좀 다르다. 쇄신위 회의가 잘 열리지 않는 대신 새누리당이 이 사안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눈치를 보고 있다. 이를 테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공천제 유지하면서 여성 할당을 강제하기 위한 뭔가를 해보자 하는데 토론회 자체가 열리지 못한다. 지금 새누리당의 한 의원이 제안한 안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고 기초 비례는 유지하고, 그 비례의 비율을 높여 전부 다 여자를 준다는 것이다.
▷ 그건 웃기는 제도다. 생각해 봐. 솔직히 말해 1991년도에 정당공천이 없었지만 다 내천했다. 지들끼리 이미 다 해. 이건 공천을 폐지한다 해놓고 분명히 다 내천을 할 거다. 당 조직이 다 움직일 거고. 비례를 준다는 건 내천과 연관이 있다. 그러니까 돈벌이는 뺏기기 싫은 거지. 정당공천 폐지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내세우지 않으면 눈가리고 아웅이다. 훨씬 더 음성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내천이라는 음성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나, 여세연은 여성의원이 수적으로 적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는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역정당 공천이 가능하도록 제도변화를 요구한다면 다들 지역정당으로, 풀뿌리정당으로 출마할 수 있을까?
▷ 지역정당이 만들어지면 분위기는 굉장히 달라질 거다. 지역에서 단체활동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토호들도 좋아한다. 토호들은 자기네가 돈을 대야 되니 중앙당.. 위원장들을 미워한다. 그러니 저거 엿 먹이자 하고 자기네들끼리 똘똘 뭉칠 수 있다.
■ 지역정당을 디자인한다고 할 때 크기나 틀을 기초, 광역 중 어느 단위로 그려야 할까?
▷ 기초단위로 그려야 한다. 우린 크게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풀뿌리는 작아야지.
차라리 나는 지방의회 같은 경우는 광역을 없애고 단위별로 쪼개 권력을 약화하면 좋겠다. 얻는 게 적으면 출마를 덜 한다. 지방의원이 봉사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누가 갖고 싶겠나? 일하는 자린데, 하지만 이건 권력이거든. 이거 한번 해보면 정말 놓기 싫다. 내가 00당에서 엄청난 요구가 있고 광역 비례도 주겠다고 했을 때 ‘이걸 내가 가질 거냐?’생각하니 그러면 나를 버릴 것 같더라. 그래서 냉정하게 딱 끊었다. 마지막 세 번째 나왔을 때는 “이번에 당선돼도 세 번 하고 안 할 겁니다. 그리고 떨어지면 끝낼 겁니다.” 공언을 하고 다녔다. 주민에게 얘기한 것은 나와의 약속이었고 나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오뉴월의 모닥불도 쬐다 안 쬐면 섭섭하다고, 남자들은 미친다. 나는 떨어져도 너무 좋다 룰루랄라 슬리퍼 질질 끌고 정장을 안 입어도 좋고, 가다가 욕도 해도 되고. 자유인이 되지 않나. 국회의원하다가 센터 운영위원장 하니 남자들이 뭐라 하냐면 “최 의원은 어째 그래 씩씩해?” 날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건 시장 밑에서 일하는 하급이라고 치는 거지. 하지만 우린 일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지방의원 봉급은 주지 않으면 좋겠다. 다른 일 하면서 스위스처럼 저녁에 가서 일하게 하면 확 떨어질 거다. 아마 그렇게 되면 일하는 자리로 바뀔 거다.
▷ 그래서 스웨덴처럼 정치인은 3D직종이 돼야 한다. 집중된 권력들을 어떻게 분산시킬 것인지 그거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봉사제로 한다 하더라도 어쨌든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예를 들어 정당공천제를 없애지 않으면 분명히 돈이 오가지 않겠나?
▷ 91년도인가 2기까지인가는 거의 무료로 일했다. 나중에 의장만 주었고, 우리가 들어갔을 때에도 처음에 의정활동비로 50만원밖에 안 줬다.
- 그게 적당했던 것 같아. 거기다 회의수당만 주고.
- 아 왜 이러세요?^^
▷ 그러다 유급제로 됐던 건 유수한 전문가를 생활정치로 끌어들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들어와도 말짱 헛일이지 않나.
■ 2002년과 비교해볼 때 지금 지방의회가 후퇴했나?
▷ 후퇴했다. / 그렇다. 일하는지 마는지 전혀 소식을 알 수 없다.
■ 그러면 지역이 바뀐 게 없다는 말인가?
▷ 우리가 잘 봐야 할 건 지금의 변화는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변화된 것이지, 지방의회가 잘 해서 바꾼 거라고 볼 수는 없다.
▷ 2천년대는 90년대와 판이 다르다. 의제는 분화되고 시민사회역량은 급속도로 약해졌다. 시민사회가 의제를 못 찾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민원인이 지역 풀뿌리단체로 찾아오나? 90년대는 현장을 쫓아가고 어딘가에 싸움이 일어나면 언제나 결합했지만 그 이후로는 주민과 시민사회가 유리됐다. 시민사회 역동이 줄어든 것과 지방의회의 질이 줄어든 것과는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 저는 조금 다른데 4대 때 의원 연수를 가면 족구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연령대가 워낙 높기 때문에. 지금은 평균 연령대가 10년은 낮아졌다. 새누리당도 열심히 일하는 젊은 사람 공천을 많이 하고. 비례 여성의원들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른다. 4대, 6대를 비교해보면 의원 발의 건수가 3배 가까이 늘고, 질적으로 수준도 높아지고 토론도 많이 된다. 의원들 의정활동에 대한 연구비나 공청회 지원도 많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지방의회 수준은 오히려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간. 제도 개선책과 내년 있을 지방선거 등 고민이 많다. 오늘이 시작이니 다음에는 여성에 한정하지 말고 지난 10년의 지역정치운동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 긴 시간 다들 수고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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