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박병선과 이주희
2012. 4. 13 / 관악사회복지 사무실
정리 : 제갈임주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박병선
... 과천 시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 만든 <맑은내 방과후학교>에서 7년간 교사로 일했다. 한 때는 맑은내에서 잠시 나와 방 한 칸을 얻어 딴 살림을 차렸다. 학교 안 다니고 동네 배회하는 중학생들 꽁무니를 따라다니던 끝에 마침내 그들과 친해져 여행, 파출소 출입, 자전거포 운영 등으로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과 뒹구는 생활을 정리하고 2012년, 자체 안식년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아이들 생각으로 가득하다. 다른 세상을 궁금해 하는 그에게 산 너머 동네를 소개해 주었다.
이주희
... 자기 마을을 무척 사랑하는 <관악사회복지>의 활동가다. 경력 7년차이지만 활동의 기원을 따지면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0여 년 전 <관악사회복지>의 고등학생 자원봉사모임인 ‘햇살’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햇살’을 통해 성장한 이주희 씨는 동생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즐겁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자리를 꿰 차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이제 ‘언니, 누나’의 역할은 청년들에게 물려주고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할 ‘돈’ 벌 궁리를 하는 중이다.
오늘의 대담, 주로 박병선 씨가 묻고 이주희 씨가 대답했다.
많은 대화를 굴비 엮듯이 엮어내려니 너무 길다.
할 수 없이 뚝뚝 끊어 정리했다. 연결이 안 되더라도 용서하시길..
<읽고 넘어가세요.>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시민단체 <관악사회복지>에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별 모임이 있다.
* 햇살 ... 고등학생들의 자원봉사 동아리. 주된 활동은 동네 초등학생을 모아 주말에 공부방을 운영하는 것이다.
* 오존 ... 스무 살 이상의 청년모임. ‘햇살’활동을 하던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고3이 되면 활동을 접는데, 고3 때에도 열심히 활동하던 네 명의 젊은이들이 청년모임 ‘오존’을 만들었다. 지금은 회원이 14명으로 늘었다.
* 햇살학교 ... 주말에만 열리는 초등학생 공부방. 공부방이라고는 하나 공부는 하지 않는다. 햇살의 언니, 오빠들과 토요일 한나절 같이 밥 먹고, 프로그램 하나 하고, 분기별로 나들이 가고, 여름에 캠프간다. 햇살학교의 모든 일은 햇살과 햇살학교의 학생들이 스스로 꾸려간다. 작년까지는 관악사회복지의 이주희 간사가 이들의 뒤를 봐 주었지만, 이젠 오존의 청년들이 그 일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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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에게 물었어요. “뭘 할래?”
(이주희) ‘오존’이 만들어지고 처음에 청년들에게 “뭘 할래?”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자기네들이 여기서 자치활동 하면서 얻었던 것들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대요. 그래서 ‘햇살’ 모임의 고등학생들을 청년들에게 맡겼죠. 1년쯤 지나니 고민을 하더라구요. 동생들 것을 빼앗아 자기네가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자신들은 너무 익숙한데 동생들은 변두리에서 구경만 하니까 자기들만의 활동을 찾고 싶은 마음이 생겼나봐요. 그래서 계획한 것이 콘서트였어요. 힙합, 랩.. 다들 음악을 좋아했거든요. 아이들은 관악구를 다 뒤져서 클럽 같은 분위기의 공연장을 찾아냈어요. 공연기획부터 시작해 장소섭외, 소개영상, 홍보, 표 파는 것까지 청년모임에서 했지요.
그런 친구들에게 저는 계속 질문을 던졌어요.
“이 활동이 너희 취미생활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겠냐?”고요.
그저 우리가 친목 모임이고 우리만 재미있는 일을 하는 거라면 <관악사회복지>에서는 지원할 수 없다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랬더니 자기네끼리 의미를 막 붙이더라고요. “지역사회 공연문화도 만들 수 있고, 수익금으로는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활동기금을 만들어주고 싶고...” 여러 이유를 만들면서 활동의 원동력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청년 네 명이서 하루 공연으로 백만 원 넘게 벌었어요. 공연을 마치고 나서는 ‘이 돈을 어떻게 쓸지,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돈을 주었는지, 자리도 불편하고 재미없는 공연에 돈을 준 이유가 뭔지’ 이야기하는 지난한 과정들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많이들 변했어요.
그렇게 청년들이 딱 자리 잡고 나니까 이번엔 그 밑의 친구들이 달라지는 거예요. 고3 되면 햇살 활동 접는다고 했던 애들이 선배들의 활동을 보게 된 거죠. 부모님한테 야간자율학습 한다고 거짓말하고, 토요일엔 자율학습 빠지고 계속 오던 친구들이 졸업하고 오존으로 들어와 지금은 3기 모임까지 생겼어요. 열 네 명이 돌아가면서 청소년 자치회를 지원하고 동생들 일지에 코멘트 써주고. 이런 일들을 하고 있어요.
요즘은 이 청년들이랑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해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당장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과 뭘 할 수 있을까, 알바비 정도를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지역 활동은 없을까. 카페도 생각해보고 자전거 수리단도 찾아가 보긴 했는데 청년을 믿고 사고를 치기에는 아직은 제가 두려워서.. 사고를 못 치고 있어요.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의 고충은 마찬가지.
(박병선) 과천은 겉으로는 되게 멀쩡한 애들밖에 안 보여요. 사람들도 다들 중산층처럼 보이구요. 그런데 제가 신경 쓰는 애들은 중학생 후반이 되면 “나 이제 공부 안할래.” 라고 말하는 친구들이에요. 그런 애들에게 “그럼 우리 뭘 해보자.”고 얘기할 수 있는 어른이 동네에 아무도 없는 거죠. 결국 고등학교에 가긴 가는데, 한두 달도 지나지 않아 자퇴하거나 동네 떠돌게 돼요. 저희 동네는 특히나 이런 애들이 갈 데가 전혀 없어요. 그럼 나는 대체 얘들과 뭘 해볼 수 있을까, 공부하자는 얘기는 답도 아닌 것 같고.. 그런 고민을 해요.
(이주희) 저희 아이들은 가난한 걸 숨기고 싶어해요. 서로 가난한 걸 다 알고 있고 뻔한 사정들이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려고 하죠. 여기도 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에요. 학교를 그만 둘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지금부터 공부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을 본인이 알면서도 그냥 살고 있어요. 가정폭력이 있는 친구들도 있는데 전혀 털어놓지 못하고, 3,4년 지나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아이들을 제대로 만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해요. 그런 친구들과 얘기도 해보고 10주짜리 마음 프로그램도 해보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하지만 어려움이 많아요.
여긴 사탕 없어도 좋은 걸!
(이주희) 이 동네는 서울에서 지역아동센터가 제일 많은 지역이에요. 아이들이 평일에는 전부 지역아동센터나 교복투(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 방과후에 가고 주말에는 여기에 와요. 가끔씩은 토요일에 운영하는 동네 복지관 선생님들한테 항의를 받기도 해요. “애들을 다 데려가면 자기네는 프로그램 어떻게 돌리냐고, 애들 보내달라고.”요. 그런데 워낙에 그런 서비스를 많이 이용했던 애들은 프로그램을 골라서 가거든요. 에버랜드 갈 때는 복지관 갔다가 그런 거 없으면 여기에 오는 거죠. 저희는 실적이 중요하지 않으니까 애들이 (복지관에) 가겠다고 하면 보내는데, 안 가겠다면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박병선) 그거 중요한 거 같아요. 성과가 중요하지 않은 공간이어야 한다는.
(이주희) 사실 에버랜드의 임팩트를 이길 수 있는 게 세상에 몇 개나 있겠어요? 그런 걸 다 줘버리고 나서는 다른 날 애들이 안 온다고 뭐라는 건 좀.. 요즘엔 영어마을이 그렇게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요. 애들은 안 가겠다는데 다른 기관에서는 성과를 남겨야 하니까 "여기 가면 콘서트 티켓 준다." 며 애들을 유인하는 거죠.
요즘 싸움의 주제는 영어마을, 그래도 애들이 안 간다는데 내가 어떻게 하냐고요!
세대를 이어주는 <관악사회복지>
(이주희) 저희 운영위원회는 10대 아이들부터 80대 어르신 대표까지 다 오세요. 운영위 보고문서가 보통 어렵고 재미없으니까 어르신들은 힘들어 하면서 말없이 앉아계시거든요. 그런데 10대가 활동 보고를 할 때면 그제야 어르신들이 반응을 하세요. "저희, 나들이도 갔다 왔구요, 이것도 했구요.."말하면면 "아이구, 착한 일 했네. 근데 나들이는 그 추운 날 갔다 왔어?"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서 저도 많은 걸 배워요. '아, 보고문서는 저렇게 써야겠구나' 하고 말이죠.
청소년들을 동네 어머니, 어르신들과도 만나게 해요.
여기서 만나는 어른들에게는 성을 낼 수가 없으니까, 부모님에게 들을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좀 듣게 하는 거죠. 어르신들을 만나서는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너희가 잘 듣고 자서전을 만들어드려라."고 하는데 어르신들도 좋아하시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것 같아요.
교육도 전에는 제가 하거나, 외부의 유명한 강사를 모셨거든요. 그러면 저희 아이들은 다 자고, 딴 짓하고 엉뚱한 질문 하고.. 그럼 섭외한 제가 민망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주제를 스스로 정하게 하고, 대학생들이 먼저 모여 교육내용을 짜요. 그리고 고등학교 후배 한 명씩 데리고 교육을 하는 거죠. 그렇게 과외받은 후배들은 다시 강사가 되어 또래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요. 애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얼마나 열심히들 준비하는지.. 한 서른 명 둘러앉아 자기 얘기 해가면서 서로 교육하는 걸 보면 옛날에 외부강사 앞에 놓고 잘 때랑은 분위기 완전 달라요.
(박병선) 관악사회복지는 주민공동체의 지향이 있는 거네요.
과천은, 이렇게 말하기 조금 민망하지만 중산층 공동체가 어느 정도 있어요. 성미산 동네랑 비슷할까요.. 공동육아나 대안학교에 자기 아이들을 보내는데 최소한 한 달에 40만 원에서 70만 원까지도 들어가는, 그 정도의 여유가 있는 부모들이 각각 흩어져 있다가 일이 생기면 연대하는 거죠. <맑은내>는 어쨌든 시혜적으로 시작한 데에요. 교육운동을 하던 중산층들이 모여서 자기 자녀들은 보내지 말자고 나름 결의 하고 만든 곳이죠. 자기들은 다른 식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보니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요. 관악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청소년 자치활동이 섞여 들어가는게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하나 아쉬운 건, 맑은내도 지역아동센터 딱지 안 달고 그대로 몇 년 더 갔으면 아이들만의 공동체라도, 언니동생 관계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겠단 생각이 듭니다. 맑은내 졸업생이 놀러와도, 지금은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으니까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이 못 되거든요.
마치며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박병선) 지역사회 청소년 문제는 지역사회에 아이들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지역사회에는 누구의 자리도 없어요. 어른들은 자기 자리를 전부 다른 데서 찾고요. 말하자면 지역사회는 ‘어른들이 다 나간 동네 집'처럼 비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 어른들이 들어오고, 그 어른들의 네트워크가 살아나면 아이들의 자리는 저절로 생기지 않겠어요? 관악은 이런 ‘마을’ 만드는 작업을 천천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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