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속 아파트공동체, 파주 교하1차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2012. 11. 4
정리: 제갈임주(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지난 8월30일 <좋은예산센터>에서 주최한 ‘주민이 결정하면 행복해진다’ 첫 번째 사례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주민이 예산을 결정하여 지역의 변화를 이끈 사례로 충북 옥천군 안남면과 경기 파주시 교하1차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주민의 사례담을 들었는데요, 그 중 파주 교하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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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교하1차 월드메르디앙 아파트는 2001년 4월 준공되어 10년이 넘은 아파트 단지로 총 세대수는 1507세대이다(최승우, 좋은예산센터 자료 中). 18개 단지에 6천 명 이상이 밀집되어 사는 이곳에서 2년 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보통 전직 공무원이나 퇴직한 주민이 출마하는 동 대표 선거에 35세의 젊은 남성인 김승수 씨가 도전장을 낸 것이다.
김승수 씨는 처음부터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마한 것은 아니었다. 지역사회복지를 전공한 교수로서 지역사회 활동의 경험이 필요하기도 했고,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비리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그 발단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부녀회 회원들과 상의해 출마한 그는 선거에서 이겨 동 대표로 당선이 되었다. 다음 단계로 입주자 대표회의 임원을 구성하는데 다른 동 대표들은 김 씨에게 감사를 권했다. 그러나, 대표가 되는 편이 아파트를 더 빨리 개혁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회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동 대표뿐만 아니라 부녀회도 깜짝 놀랐다. 결국 세 명의 전직 교장과 공무원들과 겨뤄 4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주자 대표회의의 회장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아파트의 분란은 시작되었다. “젊은 놈이 미쳤다고 이걸 하냐. 분명 시의원하고 국회의원 되려고 나온 놈이다. 소장과 짜고 큰 거 해먹으려는 놈이다.”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고, 첫 회의부터 삿대질이 오가는 아수라장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전부터 아파트에는 업체로부터 돈을 받았던 전례가 있었다. 장터가 열리면 수천만 원의 커미션이 오갔고, 호별 방문 영업을 허락하는 대가로도 돈이 오갔다. 그동안 입주자 대표회의는 주민이 모르는 사이에 모든 정책을 결정해왔다. 김 씨는 이 모든 비리와 결별했다.
김 씨가 제일 처음 한 일은 회의를 개방한 일이었다. 회의록을 작성해 아파트에 붙이고 주민이면 누구나 참관을 허용했다. 회의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TV를 켜면 가정에서도 회의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동 대표간에 고성이 오가고 멱살잡이 하는 광경은 점차 사라져갔다.
주민들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아파트 도색부터 시작해 아파트 값을 올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이들 교육문제를 서로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욕구를 가진 주민이 소통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던 김승수 씨는 <더 체인지>에서 주관하는 ‘모떠꿈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고, 한 진행자의 제안으로 ‘주민 컨퍼런스’를 준비하게 된다.
먼저 컨퍼런스에 참여할 주민을 모아야 했다. 홈페이지를 활성화하기 위해 이벤트를 진행했다. 사연을 보내주는 주민 20명을 뽑아 대표가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케잌을 전달하는 행사였는데, 이를 통해 7백 명의 주민이 한꺼번에 홈페이지에 가입했다. 다음으로는 ‘우리 아파트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에 대한 주민제안 의견을 받았다. 댓글과 클릭 수가 많은 10개의 아이디어를 선정해 이를 ‘주민 컨퍼런스’의 주제로 삼았다.
컨퍼런스는 2부로 나눠 진행했다. 1부는 10개의 테이블로 나눠 주제별로 이야기하는 전체 토론시간이었고, 2부는 동별 모임으로 기획했다. 동 대표에게 일정한 역할을 맡기고 동별 모임을 따로 배치한 데에는 주민들에게 동 대표를 잘 보라는 숨은 의도도 있었다. 자질이 없는 대표는 앞으로 뽑지 말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이 날 동 대표의 3분의 2가 나오지 않았다. 동 대표들은 그만큼 주민과의 만남 자체를 두려워했다. 컨퍼런스에 참여한 주민들은 “이제 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며 “이런 대표는 뽑지 맙시다.”하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파트에는 광고료와 분리수거 수익금인 2억 원 정도의 가용예산이 있었다. 이를 주민이 제안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아파트 내 필요한 시설을 설치하고 영화제와 벼룩시장, 청소년 캠프 등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도 주민의 역량을 모아 진행했다. 중간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의 방해로 힘이 빠지고 위축되는 시간들이 있었으나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제안한 일이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좋은 대표와 주민의 역할, 자치의 힘을 확인하게 되었다. 주민들은 자기 아파트 사례가 옆 동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타 지역에 우수사례로 소개되며, 서울시와 시민단체, 스웨덴 연구팀에서도 찾아와 인터뷰를 하니 자연스레 자부심이 높아져 갔다.
당분간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연예인을 초청해 ‘리빙 라이브러리’를 열고, 2년간의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판하기로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는 시민운동박람회의 2차 심사를 통과하여 이미 상금 백 만원을 확보했다. 이 상금으로는, 주민들이 하고 싶었던 음악회를 대표 임기 마지막 사업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김승수 씨는 다음 해에 연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제대로 된 아파트 주민자치라는 새로운 시도가 일회적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대표 한 명이 아니라 주민의 집단적 힘으로 변화를 이어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세력을 이루어 조직을 장악하지 않아도 정보의 투명한 공개로 주민의 신뢰와 참여를 이끌어낸 파주 교하의 사례는 도시 속 아파트 공동체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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