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 지난 11월 23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공무원노조) 소속 해직공무원 142명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해직공무원 복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한반도 전쟁위기와 날치기 국회로 연일 소란했던 정국에 묻혀버렸고, 12월 강추위 속에서 39일째 이어간 농성은 해를 넘겨 무기한 연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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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국회 앞 농성장에서 진행한 촛불문화제 |
ⓒ 이재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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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대부분은 2004년 공무원노조법 제정에 반대하는 3일간의 파업으로 해고된 이들이다. 당시 파업으로 3천 명이 해고되고 480명이 징계를 받았으나, 그동안 대부분 복직되었고 142명이 아직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해고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복직을 요구하는 노숙농성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종순 회복투(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은 "해직공무원의 복직은 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공무원노조법의 부당함과 노조활동의 정당성을 함께 입증받는 길"이라며 "정당한 노조활동을 보장받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 이번 투쟁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2002년 공무원노조 출범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정용천씨는 오늘(31일)로 해직생활 8년 8개월을 맞는다. 중앙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했던 정씨는 "공무원노조가 바로 서면 세상이 확 바뀔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정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공무원이 옳은 목소리를 내면 정부를 압박할 수 있고 어떤 부처건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말이다.
공무원노조의 활동은 중앙부서뿐 아니라 지자체에 변화를 가져왔다. 2004년 입사한 한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입사 당시만 해도 지금 분위기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사무실 분위기는 강압적이었고 욕설도 난무했다. 상사가 재떨이를 던지거나 발로 차도 아무 말 못하던 시절, 직원들에게 막말을 하는 과장이 있으면 다시는 그런 행동을 못하게 약속을 받아내는 등 노조가 개입하면서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노조가 있어 가능했던 공직사회의 변화
권위적 조직문화뿐 아니라 공무원의 비리도 점차 줄어들었다.
인천 서구청에 근무했던 해직공무원 박철준씨는 "90년대 초반에는 '세무과 5년 근무해서 집 못 사면 바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면서 "인천만 해도 수억 원의 세금을 개인이 착복한 사건부터 하다못해 쓰레기봉투를 팔아 수백만 원 챙긴 동사무소 직원까지 과거에는 공무원의 크고 작은 부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2001년 구청 총무과에 근무할 적에는 부녀회, 통우회 같은 관변단체들이 매일 돌아가며 직원들 밥을 사주었다"며 직원 누구나 잡고 물어보면 이런 에피소드 한두 개씩은 나올 거란다.
노조가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역할 이외에도 부당한 인사 관행을 바로잡고 직원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개선하는 데 역할을 하다 보니 공무원들의 노동조합 가입율은 꽤 높은 편이었다. 2004년 인천 서구청의 경우를 보면 가입대상자 800명 중 31명을 제외하고 모두 노조에 가입했다. 다른 한 지자체의 경우에도 500명 직원 중 320명이 현재 조합원이다.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6급 이하 직원들은 거의 가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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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노조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하철 선전전 |
ⓒ 제갈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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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 있어도 받아주던 설립신고를 이제 와서 왜?
공무원노조는 지난 몇 해동안 설립신고를 둘러싼 내부 의견 차이로 조직이 나눠지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 9월 전국공무원노조와 민주공무원노조, 법원공무원노조가 단일노조로 통합하여 같은해 12월 설립신고서를 제출했으나 노동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합원 가입대상·규약내용과 제정 절차 등을 문제삼은 정부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총투표까지 실시해 보완 제출했으나 정부는 다시 신고서를 반려했다.
이 과정에서 해고자들은 조합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의결단위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회복투 집행위원장인 김은환씨는 "회복투 동지들이 분노는 했지만 이 문제로 조직이 다시 분열되기를 바라진 않았다"며 "해고자가 있어도 2006, 2007년에는 다 받아주었던 설립신고를 지금 와서 문제삼는다는 것은 이 사안이 결코 행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고 했다.
해고자가 지닌 서운함만큼 현직에 있는 조합원들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과천시에 근무하는 이승구씨는 "많은 분들이 고생하고 징계를 받는데 같이 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크죠. 노조를 탈퇴하라는 압력이 들어와도 직원들이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해직된 분들도 계시는데..하는 마음이 있죠."라 말하며 탈퇴압력을 받거나 지부사무실 폐쇄같은 외부의 강압보다는 그런 강압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힘이 꺾이거나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국회 앞 농성투쟁, 전국공무원노조 차원에서 연장하기로
오랜 해직생활을 보내며 조금씩 지쳐가던 이들의 농성은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해직동료들이 서로 얼굴을 알게 되고 각지에서 찾아오는 현직 동료들의 지지방문에 그간 쌓인 마음의 응어리도 조금씩 녹았다.
전망과 희망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회복투는 해직공무원특별법 통과를 위해 농성을 연장하기로 했고, 전국공무원노조 중앙집행위원회는 12월29일 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회복투의 결정을 존중하고 공무원노조 전체 차원에서 이 농성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양성윤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설립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정치적 판단 때문"이라면서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단결하는 모습은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 말했다. 실제로 3차 반려직전 비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노동부는 설립신고에 긍정적이나 윗선의 결정을 기다린다고 했고, 행안부의 한 관료도 그 말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양 위원장은 "그동안 해직공무원의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설립신고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 설립신고를 다시 할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현재 "노동조합 관련 해직 및 징계처분을 받은 공무원의 복권에 관한 특별법안"은 2009년 12월 발의된 이후 지금까지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 한나라당 간사인 김정권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해직 공무원 복직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에 참여하였다. 표류하는 해직공무원의 해결책, 다가오는 2011년 국회에서는 기대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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