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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人間/의정일기

반대 유감? 논쟁 유감!

by 제갈임주 2019. 6. 3.

요즘 <과천사랑> 인터넷 카페에서 종종 언급되는 민간단체 <과천> 주최의 에너지강좌에 다녀왔다. 그날 강의를 맡은 이는 윤 모 교수였다. 그는 몇 달 전 서울대공원 태양광 사업을 반대하는 과천시민에 대한 비판 글을 경향신문(에 게재해 <과천사랑> 카페에서 집중 포화를 맞고 있던 터였기에 나는 그 교수가 과연 어떤 내용의 강의를 할지 호기심 반,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마음 반을 갖고 강좌에 참석했다.

강의내용은 최근 급격한 기후위기와 이를 막기 위한 전지구적 합의,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력 등 비교적 흔히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었고 강사는 그것들을 아주 열정적으로 토해냈다. 재밌었다. 두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빨리 갔다.

내용 그 자체에 너무 집중했던 까닭일까? 재생에너지, 그중에서도 태양광 발전을 통한 일자리 창출의 효과와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는 시민단체를 후원하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참을 수 없이 ...불순한 의도로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건은 질의응답 시간에 일어났다. “강사님은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오셨죠?” 예상치 못한 날선 질문이 강사를 향해 날아가 꽂혔다. “무슨 목적이라뇨? 초청받아 왔죠.” “초청한 사람이 누구죠?” “그야 당연히 주최측이죠.” 이렇게 시작된 문답은 서로의 감정을 격앙시켰고 의도치 않게 구경꾼이 된 청중들은 간간이 야유와 어이없다는 반응을 터뜨렸다.

이 강좌 자체에 불만을 갖고 참석한 이들은 (과천에 대규모로 짓는) 태양광 사업을 반대하고 원전을 찬성하며 현재의 정권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불만과 불신을 갖고 있었는데 그 불신이 과도한 추측과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던진 몇 마디 질문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생각,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끼리 대화가 가능할까 싶지만 그나마 직접 대면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를 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감정적으로 대응한 강사에 대해서는 특히 그랬다. ESS 화재의 문제나 온실가스 감축방안 등에 대해서도 본인이 가진 지식으로 얼마든지 질문자의 불안감을 덜고 이해를 높이는 답변이 가능했을 텐데 맞받아 싸우거나 전문가의 권위로 눌러 이기려는 모습은 당혹스러웠다.

우리는 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감정적으로 대할까? 무례하고 도발적으로 질문하게 되는 걸까? 또 그 질문에 우리는 왜 야유를 던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 원전이 더 좋다고 믿을 수 있잖아?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잖아?

이 지겹도록 반복되는 질문의 답에 이제는 거의 다 온 것 같다. 직접민주주의에서 시작된 나의 고민과 실천은 몇 년간 생각지도 못한 여러 경험과 파도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사회적 갈등과 합의민주주의, 시민교육을 거쳐 정치교육까지 고민의 주제는 해를 거듭해 진화했다. 앞서 밝혔듯 나는 올해 연구모임에서 이 마지막 주제를 다뤄볼 생각이다.

***
이제는 알 것 같다. 뿌옇게만 보이던 이 말의 뜻을.
“젊은이들은 그 모두를 꿈꾸고 소망하길 주저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주지.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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