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행복을 찾아 나선 우물 밖 청개구리들
정리 : 제갈임주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더체인지>에서 주관하는 ‘모떠꿈 워크숍’에서 한 청소년을 만났다.
춘천에서 온 17세의 허일정 씨, 학교를 다니지 않는 그녀의 리빙라이브러리는 인기리에 진행되었는데… 깊은 인상을 남긴 그녀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자.
◎ 사진: 이창림 / 허일정 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모떠꿈 워크숍5기
존경하는 사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중학교 시절.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하루 열 시간이 넘도록 공부에 매달렸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 이 시스템을 합리적이라 여겼다. 등수대로 교실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를 깊게 사귀기보다는 성적으로 재단하고 책을 읽어도 공부의 비법을 알려주는 책들만 읽었다.
적어도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던 중에 가끔 들르던 학교 도서실에 새로 오신 사서 선생님이 좋아 놀러가는 일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책을 많이 읽게 됐다. 특히 인문고전 읽기를 권하는 이지성 작가나 박원순 시장의 책들을 접한 후로는 전에 없던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리고 ‘그동안의 내 꿈이 사회의 틀에 맞춰진 꿈이지 결코 내가 원하는 성공의 삶은 아니었다’는 자각, 또한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도서관의 사회과학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시험기간에도 공부는 안 하고 반항하듯 책만 읽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 ‘거부’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시대 일반적인 부모라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그녀는 어떻게 넘겼을까?
“저희 부모님은 지금껏 한 번도 무엇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강요한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대안교육이나 사회운동에 정보를 갖고 계신 것도 아니고요. 저는 그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게 된 것 같아요.” 그녀는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 우물 밖으로 나오다
일정 씨는 한동안 집과 서울을 오갔다. 학교 밖 청소년의 모임과 배울 거리들이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었다. 민들레와 하자센터, 유스보이스의 소모임과 여러 인문학 강좌를 쫓느라 어떤 때는 일주일에 세 번 춘천과 서울을 오가야 하는, 몸도 마음도 피곤한 시간들이었다. 다양한 교육적 기반시설과 모임, 사람들까지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고 결국 서울행을 결심했다. 그러나 일정 씨 특유의 느긋함-본인은 게으름이라 칭하는-에 밀려 시간만 흘려보내던 중, 춘천에서 현수막 하나를 발견하고는 두 번째 머리를 치는 충격을 받았다.
“2013 사회적 기업 창업 아카데미”
말로만 듣던 단어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이런 것들은 서울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는데 춘천에도 사람이 있고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은 일정 씨에게 희망으로,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춘천에 절망하고 서울만 쫓았던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또 한 번 깨친 사건이었다.
이제 일정 씨는 마음 속 불평을 지우고 친구를 찾아 나섰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이 춘천에는 무척 많은데 그 많은 친구들이 어디에서 지내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모을 생각도 하지 못한다. 학교 밖 청소년은 전국적 문제고, 춘천은 더 심각하지만 다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도 어쩔 수 없이 가야하고 대학도 어쩔 수 없이 가야하고. 일정 씨는 이런 ‘어쩔 수 없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에 대해 늘 많은 생각을 한다.
◎ 우물밖청개구리. <아르숲> 프리마켓 5번째 푸드카트를 마치고 (출처 http://blog.naver.com/teenfrog)
손 맞잡은 잉여들의 자립을 향한 도전
그녀는 우선 중학교 시절 친구 가운데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무작정 만나 “우리 활동을 같이 해보자. 너도 잉여잖아.”하고 말을 꺼냈다. 꿈이 있어 학교를 나왔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진 친구들은 아니었다. 부당함에 익숙해진 채로 지냈던 이들은 일정 씨의 생각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맺어진 학교 밖 친구 두 명과 학교에 다니는 다른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우물밖청개구리(이하 청개구리)>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의 첫 번째 꿈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다.
지금은 <마더센터>라는 협동조합 카페에서 회의 공간을 빌려 쓰고 있지만 온전히 쓸 수 있는 아지트를 갖고 싶다. 그래서 지난 10월에는 <아르숲>의 프리마켓에 참여해 고르곤졸라 피자와 레모네이드, 인도 음료 짜이를 직접 만들어 팔았는데 꽤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보통 사람들은 청소년이 벌이는 일에 호기심을 갖고 좋게 생각해주는데 그 덕을 본 결과이기도 했다.
꼰대들 상대하기
하지만 청소년이라서 겪는 부당함도 있다. 그 중 하나는 “나도 너희 땐 다 해봤다”며 진지한 이들의 시도를 한 때의 치기로 돌리거나 무시하는 사람을 만날 때다. 일정 씨가 생각하는 ‘꼰대의 기준’은 아래와 같다.
첫째, 자기 말만 고집하고 남의 말은 경청하지 사람,
둘째,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사람,
셋째, 현실을 핑계대고 비관만 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뜨끔해 하는 어른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꼰대는 나이와 상관없는 것. 그녀가 만난 가장 어린 꼰대가 열 두 살이었다나?
이와는 달리 귀찮은 경우도 많은데, 미용실을 가거나 택시를 탈 때 언제 누구를 만나건 받게 되는 질문 때문이다. “몇 살이에요? 어느 학교 다녀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다시금 물어온다. “아니 왜? 학생이 학교를 다녀야지.” 세상에 정해진 답이 어디 있으랴마는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난감한 상황에서 대답을 하자니 귀찮고 안 하자니 기분 나빠할 것 같다. 상대는 호의로 묻지만 나는 싫은데 어떡하나? 떳떳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써야 하니 말이다. 나이, 학교, 고향, 결혼여부가 한국에서의 4종 세트 질문이라는데…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우리들의 질문부터 돌아볼 때이다.
우리의 도전이 친구들에게 용기의 씨앗이 되기를…
청개구리들만의 아지트를 가지려면 프리마켓에 몇 번 더 참가해야 할까? 그들에게 공간은 수익을 내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다. 즉, 공간을 운영해 돈을 벌고 그 수익으로 문화 활동을 펼치려 한다. 당장 10월까지는 프리마켓을, 11월에는 ‘청소년 꿈 파티’를 열어 학교와 상관없이 친구들과 모여 서로 나누고 싶은 대화를 시도해 볼 것이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모두가 멋져질 수 있을 텐데’하며 변방의 소도시를 불평하던 모습은 엷어지고 스스로 만드는 기회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서로의 능력에 놀라는 청개구리들. ‘어쩔 수 없음’을 뚫고 행복한 길을 찾아 나선 이들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라 불안하고 막막하다. 하지만 그런 자신들을 보면서 다른 친구들이 용기를 얻고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모든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청개구리들 마음 속 품은 질문을 다시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싶다. ♣
<참고>
●우물밖청개구리 http://blog.naver.com/teenfrog
●창작공간 아르숲 http://artsoup.cccf.or.kr
창작공간제공 및 시민소통프로그램의 운영 등을 통해 춘천시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춘천시문화재단의 사업이자 공간입니다.
●춘천 마더센터 http://mothercenter.net
춘천여성회가 독일의 마더센터를 벤치마킹해 후평동 지역 90명의 여성 조합원과 함께 만든 협동조합. 마을기업으로도 선정된 이 곳은 시민에게 모임 공간을 개방하며 아동‧청소년‧가족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경력단절여성의 재능을 발휘토록 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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