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公益人間/쓴 글

과천환경연합이 마련한 여성강좌를 다녀와서

by 제갈임주 2008. 7. 5.
과천환경연합이 마련한 여성강좌를 다녀와서
 
 
제갈임주 시민기자
 
  한 달전쯤이던가. 퇴근하여 돌아와보니 부엌 음식물쓰레기통 옆에 비닐봉지하나가 얌전히 놓여있었다. 무심코 속을 들여다보는데 앗! 이건 냉장고 한쪽 구석에서 썩어가고 있던 야채가 아닌가?
누가 그랬는지는 물어보나마나다. 섬세함이 유난하신 우리 낭군님의 소행이 틀림없다. 순간 들켰구나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돌아서니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봤으면 버릴 것이지 보란 듯이 쓰레기통 바로 옆에 두는 건 무슨 심보?


  아주 작은 사건이었지만 이 일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은 일을 대하는 두 사람의 다른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왜 나는 이렇게 미안해하는 걸까? 비교적 가사와 육아를 많이 나누어맡는 남편임에도 내 안의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 건 무슨 까닭일까. 결혼생활 10년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주제를 놓고 생각은 꼬리를 물고.. 스산한 가을바람 탓인지 나의 우울함도 조금씩 깊어져갔다.
그러던 차에 여성강좌 하나를 만났다.
기분전환이라도 될까 해서 별 기대없이 나간 첫날. 그날의 주제는 ‘여성-세상의 중심에 서다’였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얌전했던 학생이 결혼을 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다가 자신의 존재가 이대로 묻혀버릴 것 같은 불안에 잠못 이루던 20대를 지나고 여성민우회에서 일을 시작하여 그 일에 열정을 쏟았던 30대의 생활, 40이 되던 무렵 아이와 남편을 두고 영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나 돌아와 여성민우회 대표·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한국인권재단 이사 등 사회기관단체에서 굵직한 몫을 해온 윤정숙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불안과 열정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았다고, 불면에 시달리던 20대의 불안은 당신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열정의 반영이었다고 했다. 가족의 동의를 얻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지혜롭게 돌파하는 비법을 묻자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며 일하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열정과 노력을 내가 어떻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남편의 고백을 답으로 대신 받았다.


  지난주에는 2002년도 스물다섯 나이에 지방자치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김혜련 전 고양시의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치가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 상식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다. 정책은 이를 결정하는 사람들의 경험의 수준을 결코 넘지 못하는데, 생활 속에서 문제를 절감하는 여성들이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사회변화에 가속도를 더해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맺었다. 지금은 돌이 된 딸아이의 엄마로서 육아와 일을 언제쯤 병행할 수 있을지 거꾸로 좌중들을 향해 물어보는 강사에게 강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과천 녹색가게에서 10년동안 일을 해오신 한 어머니는 아이를 세심히 챙겨주지 못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 자기생활에 책임을 지게 하는 힘을 길러주었다고 말하였다.


  이제 마지막 강좌 하나를 남겨놓고 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들을 듣게 될지.. 마실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자신과 세상에 무관심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으로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내일을 꿈꾸면서, 일도 집안일도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대신 아주 작은 나의 욕구라도 무심히 넘기지 않고 채워가는 연습을 하면서 이 가을의 우울함을 조금씩 벗겨낸다.

  <제갈임주 시민기자. imju91@hanmail.net>
 
2007/11/08 [11:58] ⓒ 과천마을신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