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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人間/쓴 글

마을을 위한 깨알같은 상상력, 참여예산으로 풀어보실래요?

by 제갈임주 2014. 3. 29.

기사원문 : http://bit.ly/193g48O (2013.05.22. 오마이뉴스)

 

 

[행복하려면 풀뿌리부터②] 주민참여예산제가 동네와 사람을 바꿨다

 

2천만원 어디에 쓰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다

(원제: 마을을 위한 깨알같은 상상력, 참여예산으로 풀어보실래요?)

 

제갈임주

 

<오마이뉴스>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녹색당은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지역에서부터 대안을 만들어가는 얘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작더라도 눈에 보이고 경험할 수 있는 사례를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불행의 악순환에 빠져 있습니다. 좌절과 무기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우리의 생활과 동네, 지역부터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를 제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풀뿌리부터'입니다. [편집자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우리 동네. 한 시간에 한 번 오는 마을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다. 식사시간대에는 그나마도 오지 않아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려야 버스를 탈 수 있다. 등하교 때와 시간이 맞지 않으면 아이들은 정류장에 앉아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거나 먼 거리를 걸어야만 한다.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으로서 불편한 정도를 넘어 하루하루가 걱정스럽고 괴로웠다. 마침 우리 시에서 예산편성에 대한 주민 의견을 받는다기에 마을버스 운행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나는 궁금했다. 왜 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몇 달 후 열린 '예산설명회'에서 물어보았다.

"필요하다고 판단되지 않아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과천시 교통과장에게 들은 친절한(?) 답변이었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우리 과장님은 대체 어느 동네에 살고 있을까?

월급도 안 나오는데, 왜 그리 열심일까

주민이 예산편성 과정에 참여해, 직접 필요한 예산을 결정하자는 취지의 '주민참여예산제'는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의무화됐다. 아직 우리 동네처럼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지만, 제도의 취지에 따라 참여의 맛을 알아가는 주민이 서서히 늘고 있다.

서성숙씨는 안양시 부림동의 참여예산 지역위원장이다. 부림동 주민에게 필요한 예산이 무엇인지 사람들 의견을 모아 시 참여예산위원회에 전달하는 일이 서씨의 임무다. 요즘 서 씨 발바닥에는 불이 났다. 노인정, 학부모회, 동호회, 주민자치센터 강좌 등 닥치는 대로 찾아가 사람들 의견을 듣는다. 월급이 나오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가 뭘까?

"내가 보니까 이 사업이 너무 괜찮은 거예요. 부림동에 주어진 예산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씨는 주민의 의견 모으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시민 제안을 받을 때는 의견 낸 사람 이름까지 꼭 받아 적는다. 그리고 그 제안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개개인에게 알려 준다. 서씨는 "자신이 제안한 사업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뿌듯해하면 좋겠다"고 한다. 이것이 서씨를 움직이는 힘인가 보다.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초기, 사실 동네마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토건예산을 요구했다. '예산낭비' 하면 일단 보도블록 교체를 연상하는 것처럼, 필요한 예산에 대한 상상력이 미흡해서일까? 하지만, 처음에는 도로 건설, 공원·하천 정비 등 억 단위의 큰 예산을 요구하던 사람들도 점차 해를 넘기면서 달라져간다.

가까운 천변에 내려가는 철 계단을 나무 데크로 바꿔 휠체어나 유모차도 접근할 수 있도록 하거나, 원하는 주민에게 0.5평짜리 가정용 텃밭을 나눠주는 일, 등산로 입구에 식수대를 설치하고 학교 뒤 공터에 방과후 돌봄교실을 만드는 등 좀 더 생활과 밀접한 제안이 요즘은 많이 나온다.

또 10억 원 가까운 예산의 시 체육대회를 동네별 체육대회로 전환하자고 의견을 낸 주민은 이웃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사람이 동원되고 선수 중심으로 흘러가는 큰 규모의 대회보다, 가까운 이웃에게 자기 실력을 뽐내고 서로 화합하는 소규모 동네 축제가 주민들에게 더 의미 있기 때문이다.

 

 

 예산학교를 진행할 주민강사들이 모여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서대문주민참여예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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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낸 많은 제안들을 시급하거나 중요한 순서대로 가려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럿이 모여 회의를 하고 결론을 내는 과정이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만은 않다. 어떤 곳은 지역회의를 주재하는 위원장이 다른 사람 말을 자르고 자기 주장만 하는 탓에 회의가 싸움으로 번지고, 어떤 곳은 동장이 옛날이야기를 시작으로 일장연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주민이 제안한 의견을 공무원이 '된다'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 곳도 있다. 경청과 소통의 기술 등이 공무원에게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반면, 상충하는 이익을 조율하면서 사람들은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민주적인 토론 경험을 한다. 청소년 비행을 우려하는 주민들은 흔히 놀이터에 CCTV설치를 요구하는데 정작 그 논의에서 청소년은 빠지기 십상이다.

회의가 싸움 되기도... 하지만 달라진다

그러나 수원시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산 의미와 사용 등 교육을 위해 실시한 '예산학교'에서는 묻혀있던 이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청소년들은 "우리도 놀 장소가 없으니 거기서 노는 것이다"라며 "청소년을 위한 공연장과 어울릴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2012년 '수원시 주민참여예산 운영 조례 개정'을 통해 신설된 청소년 위원회가 구성되기 전의 일이라 안타깝게도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이웃들에겐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청소년 위원회는 여러 제안 사업에 대해 실효성과 우선순위 등을 검토한 의견을 참여예산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는 최근 '장애인 자립체험홈' 사업이 제안되었다. 제안자의 설명을 듣고 장애인 자립의 필요성을 공감한 사람들은 처음 제안된 금액보다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기로 결정했다. 함께 공익적 판단을 하는 일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주민이 직접 만든 참여예산 제안서 표지
ⓒ 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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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범계동의 지역위원장을 맡은 윤정현씨의 머릿속은 6월까지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주민에게 필요한 예산을 정하고 우선순위를 매겨 시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 개인 의견을 내는 게 아니기에 어떻게 하면 많은 주민을 참여하게 할지가 그의 고민이다. 

윤 위원장 생각에 '주민참여예산'이란 말은 너무 어렵다. 일반 주민에게 말을 건네자니 단어 뜻부터 길게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범계동에서는 집집마다 배포할 전단지를 자체 제작했다.

"당신이 안양시장이라면 2000만 원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이런 제목이 박힌 주민참여예산 제안서는 동 주민 전체에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청은 6000장의 출력을 고속 프린터로 해줬다.) 모인 사업 제안은 다시 주민에게 알리고 투표로 우선순위를 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수천 명의 주민이 과연 투표에 응할까?

"아파트 입구마다 투표함을 갖다 놓고 동네 여러 조직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잘 될지 모르겠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려고요."

본업과 이 일을 병행하는 윤 위원장에게서는 힘든 기색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에게 열정을 불어넣는 걸까?

주민이 어떻게 예산을 짜느냐고?

서울 서대문구의 장미선씨는 처음에는 그저 주변의 권유로 예산학교에 참여했다. 예산학교는 참여예산위원과 주민 교육을 위해 지자체가 시행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홍보하고 의견도 청취한다. 장씨는 예산학교를 거친 뒤 제도의 가능성을 깨닫고 지금은 이웃과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씨가 총무로 있는 서대문주민참여예산모임(이하 서주참)은 2011년 서대문구 예산학교 수강생들이 나서서 만든 모임으로, 그동안 이 지역 주민참여예산의 지역회의를 진행하고 이끌어 왔다. 먼저 배운 주민이 강사가 되어 다른 주민을 교육하는 '주민강사' 양성과정이 전국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도 서주참 회원들의 역할이 컸다.

최근 들어 서주참은 비영리단체로 등록했다. 자기 생활을 하면서 여가를 내어 활동하면 될 거라는 처음의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해보니 일이 끝이 없었다. 자료를 만들고 시간을 내 주민을 만나 교육하는 일을 자원봉사로만 해결하기는 건 한계가 있었다. 현재 서대문구에게 약간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좀 더 안정적인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단체로의 전환했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참여한 시민은 이웃과 소통하면서 동네를 보는 눈이 넓어지는 걸 경험한다. 혹자는 이대로 몇 년 후면 동네마다 눈에 띄는 인물들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불필요한 공사를 따져 묻고, 방청을 막는 의원들과 승강이를 벌이며, 주민과의 소통을 넓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주민참여예산을 두고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게 있다. 주민참여예산을 하려면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많은 공무원과 의원들도 "예산에 '예'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산편성에 참여하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예산은 정책이고, 주민에게 필요한 정책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이것이 바로 주민이 가진 전문성이고 주민참여예산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아시나요?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주민이 예산편성 과정에 직접 참여해 그 내용을 제안하고 결정하는 제도로, 지방재정법 제39조에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예산편성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여 시행'하도록 의무 규정하고 있다. (2011년 9월부터).

 

 주민참여예산제 작동 체계

ⓒ 제갈임주

 


참여예산의 체계는 일반적으로 위의 그림과 같다. 지역회의는 읍·면·동 주민에게 직접 의견과 제안을 받는 기구로, 20-3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거나 주민 누구나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예산의 일정 범위 내에서 소규모 주민편익사업을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자체 권한을 주는 곳도 있다.

참여예산위원회는 제안된 주민의견에 대해 심의하고 전체 예산에 대한 의견을 내는 등 행정과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위원회 규모는 20명에서 많게는 100명까지 지역마다 다르다. 일정 비율 이상 공개모집을 하며 인원 초과 시 추첨을 통해 결정하는 곳도 늘고 있다.

민관협의회에는 예산안을 의회로 넘기기 전에 주민 대표인 참여예산위원과 행정이 최종적으로 협의하는 조율기구이며, 연구회는 참여예산 초기 운영 틀을 설계하고 평가와 개선과제를 도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참여예산제도의 일반적인 체계는 이와 같지만 각 기구의 구성여부와 권한은 지역에 따라 많은 편차가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참여예산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보통 시군구청의 '기획·예산' 관련 부서에 문의하면 된다. 참여예산 활동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지역회의에 참여하거나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신청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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