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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人間/쓴 글

조목조목 따지는 즐거움, 아줌마들 동네정치에 눈뜨다

by 제갈임주 2008. 12. 24.
 
 
체육대회에만 7억? 너무하네
[주부들이 본 2009 과천시 예산] 아줌마들 동네정치에 눈뜨다
 
   제갈임주 (imju91)
 
 
지난 12월 9일부터 10일간 과천시의회에서는 2009년도 과천시 살림살이 규모를 정하는 심의가 진행되었다. 예산심의 회의장에는 예년과 달리 방청하는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들 여덟 명 가운데 여섯은 이번 방청이 처음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살림하던 주부들은 지난 3일 서형원, 황순식 시의원이 공동으로 열었던 '시민참여 예산 워크숍'에 참석하였고 그 자리에서 눈이 맞아 예산심의 과정을 함께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막무가내 정신으로 밀고 들어간 회의장

중앙동의 오진화씨는 아이 둘을 데리고 갔다. 환영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환영까지야 바라지 않았지만 회의장 입구에서 안 된다고 만류당할 줄이야.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지 시 직원은 무척 난처해했고, 그의 문책하는 듯한 딱딱한 태도에 오씨는 당황했다.


"아니 애 엄마들이 어디다 애 떼놓고 다닐 수 있냐구요. 이런 데 놀이방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아."

결국 분위기만 보고 5분만에 나오겠다고 통사정을 해서 아이들을 1층 경비실에 맡기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경비직원이 올라오기 전까지 30분간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눌러 앉아버렸다. 시간 많고 아이만 없었다면 더 봤을 텐데.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근데 방청객에 대한 배려는 진정 없나요? 경직된 회의장 분위기에 목은 바짝바짝 마르는데 의원들 앞에만 물컵이. 우리도 목마르다고요.

이제야 보이네!


만원짜리 몇 장 쥐고 시장 보는 주부들에게 2천억 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잘 안 온다. 큰 일엔 원래 돈을 저렇게 뭉텅뭉텅 쓰는 건가 보다. 아니 잠깐. 시의원이 조목조목 따져서 얘기하는 걸 보니 이제야 그 돈이 눈에 들어온다. 관행처럼 써 오던 예산이 눈먼 돈 마냥 빠져나가는 줄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질문을 피해가거나 자기 입맛에 맞는 질문에만 냉큼 그러마, 대답하는 시청 과장들을 볼 땐 당황스럽다.

어떤 의원들은 열심히 준비해서 질문을 하는데 자리만 지키고 있는 의원은 대체 뭐하는 사람? 우리 세금인데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참 신기할 뿐이다.

체육대회 많기도 하네!


직원 체육대회 3천5백만원(삭감), 자매도시 체육대회 2천6백만원, 시민의날 체육대회 1억9천만원, 동별 체육대회 3천만원, 생활체육협의회에서 여는 대회들 모두 합치면 7억. 체육대회에서 주는 체육복 값만도 3천5백만원.

게다가 경기도 신문들이랑 같이 체육대회(총 4개, 2억3천)는 왜 하는 거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게다가 직원 워크숍이다 무슨 워크숍이다 등등 워크숍이 많기도 하다. 기본이 천만 원에 최고 8천만 원이다. 내년에는 경기가 더 안 좋아진다는데 아끼려면 이런 데서 아껴야지 어디서 아낀담?

경품에 길드는 우리네 인생


별양동에 사는 백승순씨는 과천에 이사온 지 2년째다. 다른 도시보다 유난히 행사가 많다. 단체 많고 활동 활발하고 그만큼 사람들 욕구가 다양해서 문화행사도 많으려니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니 행사에 붓는 돈도 참 많다.

백씨는 올해 여성 등반대회에 참석했다. 산에 힘들게 다녀왔는데 사람들이 집에 가지를 못한다. 옆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내가 산이 좋아 온 줄 알아? 경품 때문에 온 거지."


시민의 날 행사, 자전거 대행진, 달리기 대회, 하다못해 주민자치센터나 동에서 하는 행사에도 경품뽑기를 한다. LCD TV, 드럼세탁기, 김치냉장고, 내비게이션. 워낙에 경품이 좀 세야 말이지. 혹시나 하고 기대하던 사람들, 돌아서는 발걸음 무지 허탈하다. 행사의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로또 같은 느낌이다. 과천시는 경품으로 사람 모으고 길들이는 것 같다.


광우병쇠고기 대책은 대체 어디에


-농산물 및 음식점 원산지표시단속 명예감시원 보상 180만원
-명예공중위생감시원 활동비 315만원
-식품안전주부감시단 활동비 420만원
-소 이력추적시스템 구축 93만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주부들은 무엇보다 광우병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도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세상이라 고기만 보면 "엄마, 이거 어느 나라 거야?" 먼저 물어보고, "여긴 멜라민 없어?" 확인하고 먹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과천시는 식품안전 대책을 어떻게 세우고 있나 궁금해졌다. 관련된 건 이 네 가지. 명예감시원, 주부감시단? 한 번에 3만원 정도씩 받는 자원봉사 활동 아닌가. 소 이력추적시스템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건 축산업조합에 지원하는 거란다. 과천시 나름의 체계적인 감시망, 뭐 이런 거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CCTV 운영엔 4억, 먹을거리 안전엔 1천만원. 에잉, 속상해!


시정감시 활동 이제 시작!


남자들한테만 과천시 살림을 맡길 수 없겠다는 그들, 시민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며 거침없이 말하는 그들, 의회 회의가 재밌다는 이 오지랖 넓은 아줌마들은 이제 매주 한 번씩 만나기로 했다. 대단하다는 기자의 칭찬에 이제야 관심을 가지게 된 것 뿐이라며 손사래를 치더니 "별 필요 없어 보이는데 안 잘린 것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꼭 지켜보고 싶다"며 시정감시 활동의 포부까지 은근슬쩍 내비친다.


"시민들이 1년에 한 번씩은 방청을 해보면 좋겠어요. 우리 시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라며 동료 시민들에게 제언도 잊지 않는다. 이들과 함께 열어갈 2009년의 과천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과천마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2.23 11:55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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