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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人間/흔적

경향신문 6인방기사

by 제갈임주 2008. 6. 17.

첫 제작, 배포한 ‘맑은내 방과후 공부방’ 회원들

촛불집회로 확산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운동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견일선행 약결강하(見一善行 若決江河·한 가지 선행을 보면 강의 물길이 툭 터지듯 하여 막을 수 없다). 아무리 작은 목소리도 정곡을 찌르기만 하면 언제든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 선량한 시민들이 공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 못지 않게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이런 것들을 이번에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14일 경기 과천시에서 시작된 ‘광우병 현수막’ 내걸기다.

‘광우병 현수막을 만든 사람들’은 이웃을 생각하는 소박한 주부들이자 아저씨들이었다. 과천 중앙공원에서 열린 단오축제 행사에 나온 박병선, 최현, 이화영, 제갈임주, 이해정씨(왼쪽부터)가 활짝 웃고 있다. 과천 _ 서성일기자

 

‘광우병 현수막을 만든 사람들’은 이웃을 생각하는 소박한 주부들이자 아저씨들이었다. 과천 중앙공원에서 열린 단오축제 행사에 나온 박병선, 최현, 이화영, 제갈임주, 이해정씨(왼쪽부터)가 활짝 웃고 있다. 과천 | 서성일기자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시민 6명이 시작한 현수막 내걸기는 예기치 못한 에너지를 이끌어냈다. ‘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라는 현수막은 촛불집회에 폭발적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이 일을 시작한 과천 ‘맑은내 방과후 공부방’ 회원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누구이기에 그토록 시의적절하게 나타나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에 기름을 부었을까. 그리고 보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휴일인 지난 1일 단오축제가 열리고 있는 과천 중앙공원에서 그들을 만났다. 주부가 셋, 아저씨가 둘이었다. 6명 중 한 명인 서형원 과천시의원(무소속·39)은 해외 출장 중이었다. 해맑게 웃는 그들과 잔디밭에 마주 앉았다.

“이번 일은 아이들이 먼저 한 겁니다.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이나 집의 아이들이건 들어오기만 하면 책가방을 던지면서 쇠고기와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거 먹어도 되냐, 저것은 괜찮냐, 불안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의견을 표시했다는 이야기도 들렸고요. 저희들은 그저 아이들을 위해 현수막을 걸어놓으면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한 것뿐입니다.”

그들의 말대로 시작은 소박하고 미미했다. 누구의 아이디어라고 할 것도 없었다. 1~2주마다 모여 공부방 운영에 대한 회의를 하는데, 자연스럽게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0명 안팎이 모이지만 그날 모인 사람은 6명이었을 뿐이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현수막 디자인은 함께 활동 중인 디자이너 조미정씨에게 부탁했다. 가로 1.7m, 세로 1.2m의 디자인은 그래서 나왔다. ‘미친 소’가 배에 실려오는 민중미술가 김동호 화백의 그림은 어느 단체를 통해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대충’ 받았다. (그러나 김 화백은 나중에야 TV를 통해 자신의 그림이 현수막에 들어간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문구며 디자인이 부드러워서 좋았던 것 같아요. 베란다에 거는 게 빨강 일색이었다면 아마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디자이너 조씨와 거래하는 곳에 1만원씩 주기로 하고 현수막 제작을 의뢰했다. 우선 6명이 20장씩 맡아서 120장을 팔기로 하고, 여유분까지 넉넉잡아 200장을 우선 주문했다.

“현수막을 받은 게 연휴 끝인 화요일(13일)이었어요. 그리고 바로 내걸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튿날부터 걷잡을 수 없이 일이 확대되었어요. 채소가게 아저씨가 현수막을 보고 사진을 찍어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올린 겁니다.”

“1분 단위로 전화가 걸려오는데 혼났습니다. 서형원 의원 홈페이지는 다운됐습니다. 그렇게 폭발적인 반응이 나올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요. 나중에 보니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글이 잔뜩 올라와 있더군요. 어떤 분은 다짜고짜 전화해서 파일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더군요. 인터넷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들은 모두 1000건이 넘는 파일을 보내줬다. 뿐만 아니었다. 현수막을 내거는 순간 그들은 이웃 주민들의 뜨거운 ‘참여’를 확인했다.

“저의 집이 반지하인데 현수막을 걸 장소가 마땅치 않아 집 뒤쪽에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같은 골목에 사는 이웃 아주머니가 잘 보이는 곳에 걸고 싶다며 현수막을 떼어다 자기네 집에 걸었더라고요. 누구 집이든 잘 보이는 곳에 걸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냐더군요.”

일이 커지자 주민자치센터에서 시비를 걸어왔다. 불법 현수막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곧 해결됐다. “법적으로 정말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네티즌들이 다 알아서 정리해줬습니다. 자기 집에 현수막을 거는 게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죠. 곧 잠잠해졌습니다. 과천시에서도 현수막의 ‘현’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들이 가장 기쁘게 들었던 말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 현수막 내걸린 것을 보면서 과천에 살맛이 난다고 했습니다. 과천에서 사는 게 즐겁다고 했을 때 가장 뿌듯했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있는 우리 현수막을 보면 가슴이 찡합니다. 어떤 사람은 망토처럼 걸고 다니더군요. 강기갑 의원의 사인을 받아 적기도 하고, 자기만의 문구나 디자인을 더해서 내걸기도 하고…. 참 다양하게 현수막이 이용되고 있어요. 하나의 유희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이제 현수막 걸기는 단순히 광우병 쇠고기를 넘어 지역주민들의 사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천의 한 부동산 관련 카페는 이것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대개는 재건축이나 집값에 대한 글만 올라가던 곳인데 쇠고기 얘기로 도배가 된 거예요. 처음에는 그 글들을 삭제했다가 나중엔 운영자가 앞장서서 글을 올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들이 마냥 행복감만 느끼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아이들 공부를 시키는 일을 하다보니 학부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된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반응 때문이다.

“아이들이 더 신났어요. 이번 일을 하면서 새삼 느낀 것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전과는 다른 것 같아요.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대통령뿐 아니라 출마한 후보들 이름까지 다 외우고 다닙니다. 이들이 건전한 시민으로 잘 자라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도 현수막은 계속 팔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과천에서 만든 ‘오리지널’이라며 사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날 축제 현장에서도 10여장이 팔려나갔다. 현수막 걸기는 아직도 진행형인 것이다.

공부방 대표를 지낸 이해정씨는 “시작은 이곳에서 됐지만 갈 길이 아직 먼 게 아니냐”며 “광주에서인가 아파트 입주자 회의에서 단체로 내걸기로 했다는데 그런 형식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수막 스토리를 들으면서 자연히 이 ‘6인방’과 그들이 운영하는 ‘맑은내 방과후 공부방’이 궁금해졌다. 평범한 시민들이라지만 평범하지 않은 힘이 그들에게서 감지됐다. 공부방 활동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과천지역에서 이런저런 사회 공익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6개월 만에 만든 ‘시민단체 네트워크’라는 설명이다.

“다들 이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분들입니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사회 공익 활동도 하고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과천지역 주민이 다 잘사는 것 같지만 의외로 소외된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자녀를 도우려고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특별히 활동에 대한 의견이 달라서 고민할 이유가 없죠.” “순식간에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잠재력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매달 1만원 이상의 후원금을 내는 회원이 160여명이다. 91학번인 제갈임주씨와 박병선씨 등 3명의 교사가 30여명의 초·중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여섯 사람 중 나머지는 공부방 외에 하고 있는 일이 따로 있다. 87학번인 이화영씨는 과천지역 ‘학교평화만들기’ 대표로 활동 중이다. 7년전 과천에서 왕따를 당하던 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89학번인 이해정씨는 월 1회 지역소식을 전하는 ‘과천신문’의 편집장이다.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서 의원은 지난 지방자치선거에서 시민들이 힘을 모아 당선시킨 사람이다.

한 번 성취해 본 사람은 다음 일이 수월한 법이다. 향후 계획을 묻는 말에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앞으로 할 일을 찾아보아야죠. 이런 일을 한다면 좀더 편하게 할 것 같아요. 그땐 더 큰 힘이 모아졌으면 해요.”

그들의 생각은 평범하고 소박했다. 그저 아이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 힘센 사람에게 힘 없는 사람들이 주눅들지 않고 사는 사회,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동네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다. 특별하다면 사회에 대한 관심과 생각을 행동에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활동들을 통해 경험이 쌓이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이번 현수막 내걸기와 같은 작지만 큰 힘을 가진 행동이 나온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결국 사람이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6050947525&code=900315#csidxf7586a3836d0442974ea9d98100ab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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