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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人間/쓴 글

동네마다 시끌벅적한 놀이터를 꿈꾸며

by 제갈임주 2008. 7. 28.

 

2009. 11. 10
제갈임주

* 과천 맑은내 방과후학교 *
맑은내 방과후학교는 과천의 저소득 가정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이다.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과천에 웬 공부방이냐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2003년 말 한국도시연구소에서 과천 저소득층 생활실태조사를 했다. 이 때 조사원으로 참여한 시민들에 의해 주택 반지하에 거주하며 생계와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부부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자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공간이 맑은내 방과후학교이다. 취지만 듣고 첫모임에 모인 사람이 30, 6개월간 일사천리로 진행된 준비과정, 공간마련을 위한 하루 후원행사에 천만원의 기금이 모일 정도로 맑은내는 많은 이웃들의 관심과 애정어린 격려 속에 시작되었다. 현재 정부지원과 함께 만원씩 내는 150명의 개미후원자와 종교, 교육, 시민단체, 기업의 도움으로 6년째 운영되고 있다.

 

바쁘고 피곤한 아이들

 

학교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은 바쁘다. 하루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 시간도 없이 다시 학원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엔 마음껏 뛰어놀아야 한다는 게 어느새 옛말이 되어버린 듯, 아이들의 일상은 배움과 미래를 준비하는 일로 가득 차 있다.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낮 시간 동안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은 휴식과 놀이를 대신한 수많은 학습과 체험의 프로그램들이다. 이런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경제적 소득 격차와도 무관한 경향을 띤다. 수십만원짜리 영어학원에 보내지 못하는 가정에서는 학습지라도 시키고 동네 피아노와 태권도, 학교 특기적성교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문화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저소득 가정을 위해 마련된 지역아동센터와 복지관의 방과후 교실, 방과후 아카데미 등 방과후 복지시설의 종류와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경쟁과 능력을 중시하는 교육풍토 속에서 방과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교과관련 학습지원은 기본, 예체능 및 체험활동을 포함한 프로그램들로 시간표를 채운다. 이는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교육복지의 취지에는 부합하나 다른 한편으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은 종종 여기 수업은 다른 곳보다 힘들다고 호소한다. 배울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의 정서적, 물질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탓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조건 주어지는 프로그램들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놀면서 변하는 아이들

 

맑은내가 시작되고 6개월이 지났을 때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없앴다. 수업시간이면 몸을 비트는 아이들, 하기 싫다고 도망가는 아이들, 자기 봐달라고 소리 지르고 어깃장을 놓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한들 얻을 게 있겠냐는 판단에서였다. 아무 것도 정하지 않은 채 매일 아이들과 놀았다. 놀이터에서 얼음땡과 탈출로 하루를 채우기도 하고, 보드게임 한 종류만 가지고 줄곧 놀기도 했다. 실로 팔찌 만드는 일에 필이 꽂혀 한 달 내내 팔찌만 만든 적도 있고, 한지공예 전시회에 갔다가 배운 지끈 공예의 매력에 빠져 몇 달간 종이로 바구니 짜는 일에 매달리기도 했다. 항상 아이들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동시에 교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놀았다. 그런 교사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저마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배고파, 시냇물(교사 별명)은 팔자가 제일 좋은 것 같아. 매일 놀기만 하지. 그래도 월급 받지. 도대체 하는 일이 뭐가 있어? 놀다가 때 되면 먹고 또 놀고.”

한 일 년간 그렇게 지내다 보니 고학년 아이들에게서 슬슬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너무 노는 거 아니야? 공부도 좀 해야 되는데. 영어시간에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영어선생님을 구해달라는 6학년 아이들의 성화에 신문에 구인광고를 냈고, 광고를 보고 찾아온 선생님과 아이들은 1년간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 사회복지사에게서 한 학생을 소개받았다.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사는 4학년 남자아이였는데, 아이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거부하고 학교에서는 엎드려 잠만 잔다고 했다. 무슨 일이든 싫어. 안해. 귀찮아를 반복하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수학문제 세 문제 이상을 풀지 못하는 아이에게 부모가 요구하는 공부를 시키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손재주가 있고 손을 움직여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교사들은 아이에게 어떤 활동이 좋을지 고민했다. 먼저 칼 쓰는 법과 나무 깎는 법을 알려주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아이는 칼부터 찾았다 숯돌에 칼을 갈고 숟가락과 인형을 깎았다. 재활용 캔을 오려 비행기를 만들기도 했다. 방과후 초창기 하다가 멈춘 도예 프로그램을 그 친구를 위해 다시 개설했고 아이는 한동안 도자기 만드는 일에 빠져 살았다. 6학년이 되고 나서 아이는 학교 숙제를 가지고 오기 시작했다. 평균 35점이던 성적이 70점으로 오르고 졸업할 무렵에는 문제집을 옆에 끼고 살았다. 밥도 안 먹으며 공부를 하겠다는 바람에 야단을 수차례 치기도 했다. 스스로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찾은 게 마냥 기특하기만 했다. 수업에 참여하고 친구들과 웃고 장난까지 치는 아이의 변화에 학교에서는 놀라워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동네 놀이터가 안겨줄 아름다운 미래

 

학원 5시에 가도 돼? 00네 집에서 놀아도 돼? 숙제 나중에 해도 돼?”

요즘 아이들은 아주 사소한 일마저도 엄마의 허락을 구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 엄마와 통화를 하는 아이에게 그런 건 너 스스로 결정해도 되는 거야.”라고 말하자 곧바로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스스로 결정해도 돼?”라고 묻는 아이를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아주 작은 일까지도 혼자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들, 아니 결정권을 빼앗겨버린 아이들에게 방과후는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까.

신체와 인성의 고른 발달이 이루어지는 초등학생 시기에 휴식의 자유가 거세된 아이들의 공격성은 날로 그 깊이를 더해간다. 중학생 가운데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과 만날 기회가 종종 있는데, 이들 중 맑은내에서 초등시절을 보낸 친구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뢰가 바탕이 된 관계 속에서 자유와 책임을 경험한 아이들이 사회적으로도 책임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하고 책임지는 습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공부할 권리, 놀 권리,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운영할 권리가 아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비록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빈둥거리기만 할 지라도 말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은 아이들의 자발성과 의욕을 무너뜨린다. 바라건대 지역아동센터는 동네 놀이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하지 않을 수 있는 곳, 실수와 시행착오 속에 책임을 배워나가는 곳, 신뢰와 사랑이 바탕이 된 인간관계 속에서 더불어 사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면 그 아이들이 만드는 미래는 더욱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2004년 개소 당시 과천에 한 곳도 없던 공부방이 현재 맑은내를 포함하여 다섯 개 지역아동센터로 늘어났다. 복지관과 어린이집의 방과후 교실, 청소년 수련관의 방과후 아카데미와 같이 저소득 가정의 아동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방과후 시설 또한 다양해졌다. 시설 뿐만 아니라 아동복지교사, 자활 및 공공근로, 공익근무요원, 학습도우미 등 사회적 일자리 차원의 증가된 인력지원도 지역아동센터의 재정적 어려움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2004년 초 244개소였던 공부방이 20096월 현재 3274(94,406) 지역아동센터로 늘어났다. 급속한 양적 팽창에 발맞춰 서비스의 질과 운영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2009년 하반기에는 전국의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했다.

시설기준과 종사자 자격요건, 투명하고 합리적인 운영과 프로그램의 내실화 등을 요구하는 평가지표가 서비스의 질을 확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지만, 객관적이고 계량화된 평가지표의 결과가 서비스의 질적 수준과 직결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예컨대 평가지표의 한 항목이자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종사자 의무교육은 매번 300명이 넘는 인원을 한 강의실에 모아 실시되고 있는데 이 교육이 현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다시 한 번 짚어볼 문제이다. 학점은행 등을 통해 취득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 자격과정은 과연 업무능력을 실제로 갖추게 하는지, 주어진 체크리스트에 의해 점수를 매길 뿐 현장의 목소리를 한 마디도 듣지 않는 일방적인 현장평가가 지역아동센터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생각하다보면 법적의무와 전문자격, 감독체계강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오히려 그보다는 감독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유연한 의사소통, 현장 실무자간에 철학과 사례를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나누는 일이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하드웨어의 마련, 공간과 예산, 양질의 프로그램 확보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 지 사회 구성원간에 의사소통과 활발한 토론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조심스레 제언해본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 자리가 더욱 뜻 깊게 다가오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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