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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人/끄적끄적

2016. 5. 20. 단양

by 제갈임주 2020. 2. 29.

그 집을 다시 찾게 될 줄은 몰랐다.
한 번쯤 가봤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지만 설마 찾기야 하겠나. 정확히 찾지는 못해도 그저 동네 언저리를 둘러볼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소박한 맘으로 나선 길이었다. 그러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것들은 몸 어딘가에 남아 기어이 나를 그 집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밖에서 보이는 작은 집은 왠지 친근해 보였다. 야트막한 담장, 저기에 분명 내가 이불을 널은 것 같은데 지금은 당시에 없었던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분명 그 때와 다른 담이지만 동네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 집 같은 담이 없다. 딱 그 높이, 이불을 널기 좋은 그 높이의 집은 여기 외에 단 한 곳도 없었다.
밖에서는 자그마한 부엌 창이 열려 있어 사람이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떨어져 나간 유리창, 뜯겨진 도배지, 무너져 내린 벽은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이제는 사람 사는 집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왼쪽 부엌을 보고 이 집이라고 확신했다. 촌스런 하늘색 싱크대 옆으로 보이는 칙칙한 시멘트 바닥, 저기서 아버지가 주저앉아 뼈가 부러졌고, 결국 서울로 올라와 병원과 엄마 집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오른편 거실(용으로 쓰이는 작은 방)에는 냉장고가 놓였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둘러보자니 개다리소반을 놓고 둘러 앉아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아버지 친구들도 이 자리에 모여 초라해진 친구의 신세와 한 조각 자유의 부러움을 안주삼아 술잔을 주고받았을 거다. 서울 친구 분들이 오시면 종종 몇 십만 원씩 용돈을 주고 가셨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남긴 몇 안 되는 유품-가계부로 쓰셨던 작은 수첩-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장례식장에서 나를 앉혀놓고 들려주신 친구 분들의 이야기와 아버지 죽음을 두고 남긴 김주영 아저씨의 글을 보면 평범치 않은, 그리고 나쁘지 않은 친구였던 것 같다(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사랑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괴짜, 돈키호테와의 이별은 내게 아주 오래된 기억이 되었다. 손꼽아보면 아직 십 년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이상하지, 어떤 기억은 바로 엊그제처럼 가까운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까마득하다.

집을 나오니 햇빛이 쏟아진다. 눈이 부셔 손바닥으로 이마를 가렸다. ‘찬란한’ 빛에서 이어지는 이 슬픔의 정체는 뭐지? 내 속의 울렁임을 못 이겨 토해낼 것 같은 눈물이 마음에 그렁그렁 맺힌다. 나는 왠지 생뚱맞아서,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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