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과천시의회 제265회 임시회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제5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의를 위해 소집된 이날 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예산심의를 거부하고 표결로 안건삭제를 시도하자, 이를 저지하는 여당의원과 회의를 끝내려는 야당의원 간의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예산안은 심의는커녕 상정도 되지 못한 채 회의가 종료되었다.
이날 심의를 반대한 4명의 야당 의원들은 “지난달 열린 임시회에서 장시간 토론 끝에 삭감된 예산안을 사전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의회에 제출한 것은 시의회 심사결과를 비웃는 처사”라고 시를 비난하였고, 과천시는 “시가 제출한 예산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본회의를 산회한 것에 유감”을 표하며 이어진 현안 질의응답에 공무원 출석 거부로 응수했다.
의회는 시가 제출한 예산안 심의를 거부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된 규정을 살펴보자. 지방의회 회의운영에 관한 사항은 『지방자치법』에 담겨있고, 이 법으로 정한 것 외에 필요한 사항은 회의규칙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각 시‧군‧구 회의규칙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과천시의회 회의규칙」을 기준으로 관련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발의 또는 제출된 의안은 본회의에서 심사‧의결함이 원칙이다(22조).
▶ 예산안이 제출된 경우에는 예산특별위원회에서 심사토록 하고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한다. 예산특위 설치운영이 어려울 경우에는 본회의에서 바로 심의할 수 있다(69조).
▶ 안건심의는 ‘제안자의 취지설명-질의-토론-표결’의 순서를 거친다. 다만, 위원회 심사를 거친 안건은 의결로 질의.토론을 생략할 수 있다(28조).
요컨대, 의회는 의원이 발의하거나 시장이 의회에 제출한 의안(조례안, 예산안 등)을 원칙적으로 심사·의결해야 한다. 특히, 예산안의 경우는 충분한 심사와 효율적 회의 운영을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심사토록 한다. 그리고 심의절차는 4단계로 구체화하여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천시의회는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않고 어떻게 예산안 심의를 피할 수 있었을까?
■ 과천시의회 회의규칙 제19조(의사일정의 변경) ① 의장은 재적의원 5분의1 이상의 연서에 따른 동의로 본회의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당일의사일정을 다음 각 호의 방법에 따라 변경할 수 있다. 1. 순서의 변경 2. 다른 안건의 추가 3. 이미 작성된 안건의 삭제 ② 제1항에 따른 동의는 이유서를 붙여야 하며, 그에 대해서는 토론을 하지 않고 표결한다. |
바로, ‘당일의사일정 변경’을 이용해 ‘안건을 삭제’하고, 심의 없이, 토론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고 회의를 종료할 수 있었다. 아래는 의사일정변경 동의 시 제출한 이유서다. 제안이유에는 안건을 삭제하는 구체적 사유를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안건의 삭제’라고만 기재되어 있다.
과천시의회와 같이 안건의 심의 회피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안건삭제 규정이 모든 시군에 다 있을까? 그렇지 않다. 경기도 31개 시‧군을 살펴본 결과 22곳은 당일의사일정 변경 방법으로 ‘순서변경’과 ‘안건추가’만을 명시하고 있다. 안건삭제를 가능하게 한 곳은 과천을 비롯한 4개 시군 뿐이다.
<회의규칙으로 정한 당일의사일정 변경 방법>
당일의사일정 변경 방법 | 해당 시·군 |
순서변경‧안건추가‧안건삭제 (4) | 과천, 안산, 안성, 양주 |
순서변경‧안건추가 (22) | 고양, 광명, 구리, 남양주, 동두천, 성남, 수원, 시흥, 안양, 양평, 여주, 연천, 오산, 용인, 의왕, 의정부, 이천, 파주, 평택, 포천, 하남, 화성 ※ 국회(국회법) |
관련조문 없음 (5) | 가평, 광주, 군포, 김포, 부천 |
국회를 비롯하여 더 많은 시군들이 안건삭제 조항을 두지 않은 까닭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과천과 같은 상황을 방지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의회운영 전문가인 모 교수는 의사일정작성권자가 의장이므로 특정 의안을 전체의사일정에서 제외시켜도 의결로써 당일안건을 추가하는 것 외에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과천시 의회사무과는 이 조언을 근거로 예산안을 상정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필자는 위 의견에도 반박할 지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다 차치하고 의장의 전체의사일정 작성권한을 인정하더라도 이 또한 원칙에 부합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과천시의회는 『지방자치법』 제36조 직무성실 의무와 같은 법 제39조에 지방의회 권한으로 정한 의결권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회의규칙 제22조 제출된 의안을 심의해야 하는 원칙을 무시하여 의회 스스로 회의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과천시의회 의원 윤리·행동강령조례」 제4조 ‘충분한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적법절차를 준수함으로써 의회가 건전한 지방자치의 장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규정이 무색하리만치 안건심사와 관련한 의원 간 토론 기회를 박탈하고 발언 요청마저 묵살하였다.
회의가 매번 파행으로 치달으며 이렇듯 하나씩 배우게 되지만 시민들에겐 더없이 죄송한 일이다. 의회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은 원칙을 무시하는 편법(便法)이 아니라 성실의 의무를 다하는 정도(正度)여야 하지 않을까? 다음 의회는 꼭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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