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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동네-잠시 옆 동네로 이사가신(I hope so)- 이OO님 이름을 엔딩크레딧에서 직접 보려고 점심시간 짬을 내어 이수역 아트나인에 다녀왔다. 영화제목은 <집의 시간들>, 둔촌주공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철거되기 전까지 살고 있던 사람과 살았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다큐물이다.
영화 속 대사를 빌자면 (집에 대해) ‘그렇게 막 욕심을 내고 살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라지는 동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다. 낡고 춥지만 집이 얼마나 편안함을 주었는지, 가만히 누워 듣는 새소리와 창밖의 나무, 햇빛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얻었는지. 마치 부모가 자식 자랑하듯 끝없이 늘어놓는 집의 예찬에 잠시 유난스러움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만 이들이 결국 말하고 싶은 것, 붙잡고 싶은 것은 흘러가는 시간, 사라지는 공간, 삶의 소중한 추억들이 아닐까 싶다.
자연부락을 밀고 지어진 주공아파트, 그 이전에 살던 사람들의 추억이 이들보다 덜할 리가 있을까마는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주공아파트에 대한 다양한 기록 작업들은 40년 전 대규모로 주공아파트를 조성할 때 이미 예정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시골집으로 대표되던 고향이 아파트로 대체되고, 80-90년대를 그곳에서 자라온 이들이 사라져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의 현상.
게다가 과천도, 둔촌도 다른 아파트와 비교되는 주공아파트만의 특별함이 있으니. 도심 속 자연을 이만큼 누릴 수 있는 곳이 드물다는 점이다. 이제 헌 집을 허물고 아무리 아파트를 고급으로 짓는다 해도 예전 주공의 조경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것 같다. 숲을 옮겨놓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과 이웃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여백이 주어진 용적률 채우기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올라서는 날이 과연 오게 될까?
그 때는 그것이 가능했다는 신기함과 고마움.
‘건축가 이름을 알고 싶다’는.. 영화 속 청년도 같은 마음이었겠지.
나 역시.
잠실 주공 2단지에서 15년을 살면서 십대의 전부를 보낸 주공키드다. 당시엔 자동차가 없어 그 넓은 주차장이 모두 우리들 차지였다. 저녁이 빨리 올까 조마조마할 정도로 재미있게 놀던 시절. 삼팔선, 오징어, 나이먹기로 동네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베란다에서 ‘저녁 먹어라’ 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릴 때에야 아쉬운 마음들을 누르며 집으로 돌아갔다.
한옥도 아닌데 안방 바닥은 온돌이었고, 부엌에는 연탄아궁이가 있었다. 지금의 자동집하시설보다 더 편리하게 집안에서 1층까지 보낼 수 있는 쓰레기 직접 투하 시스템(?)도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낮게 날던 제비들과 아침을 깨우던 참새 소리. 아파트 지하에 있던 쌀가게와 슈퍼, 교회들. 아파트 입구를 언제나 지키던 센베 과자 아저씨, 찻길 하나 건너에 있는 5단지 속 8자수영장,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흐르던 상가 옥상의 로라장(롤러스케이트장), 내 인생 최초의 패스트푸드점 ‘아메리카나’.
주공아파트와 함께 한 기억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신나서 들려줄 때면 도시에서 자란 사람의 빈약한 향수가 짠해서인지 남편은 피식 웃는다. 내게도 그 시절 기억은 소중하다. 인생 초년의 달고 쓴 기억들이 함께 있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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