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교육현장] 공부하는 교사들,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다 |
- 중앙고 교사논술동아리 ‘프로네시스’ |
지난 10월 2일 과천중앙고등학교에서는 ‘디지털 미학’을 주제로 진중권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이 열린 도서관은 150여 명의 학생과 교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로 'MBC 100분토론'을 통해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졌다는 진교수의 열강이 끝난 뒤 강연장을 나오는 이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TV에선 날카로운 인상이었는데 생각보다 부드러운 분이네요.” “오늘 강연을 들으려고 「빨간 바이러스」랑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을 미리 읽어봤어요.” 이 날 행사를 마련한 이들은 중앙고의 교사논술동아리 ‘프로네시스’였다. ‘프로네시스’는 2007년 3월 경기도교육청 지원프로그램 응모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두 명의 교사가 첫 주축이 되어 만든 이 모임에는 현재 국어, 사회, 수학, 체육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16명의 교사가 참여하고 있다. 2008년 입시부터는 여러 교과목 내용이 아울러 출제되는 통합교과형 논술 형태가 도입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논술과 무관해 보였던 과목들의 담당 교사들도 논술교육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동아리 활동은 교사들끼리 독서토론을 한 뒤 좋은 책들을 골라 논술반 학생들에게 읽히고 함께 토론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올해 들어 작가의 초청강연회도 몇 차례 열었다. 1학기에는 「철학, 삶을 만나다」의 저자 강신주,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을 초청하였고, 10월에는 소설 「외딴 방」의 저자 신경숙과의 만남이 계획되어 있다. “뭐 봤니?” 대신 “어떻게 생각하니?” 기자가 엿본 논술수업시간. 책상마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이란 한국사회 비평서가 놓여 있다. 한 명이 일부를 요약 발표하면 다른 학생들의 질문과 의견이 잇따른다. 경범죄 처벌법에 관해서 찬반 양론이 팽팽히 대립하는가 하면, 아파트 선분양 문제를 다룰 땐 사회양극화, 종합부동산세, 과시소비문화, 인간심리 문제까지 거론된다. 자기 생각을 당당히 말하는 학생들의 눈빛은 대단히 진지하다. 학생들에게 논술반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물어보았다. “재미있어요. 생각이 많아졌구요.” “원래 학교가 좀 억압적이고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부분도 많잖아요. 그런데 이젠 학교 안에서도 충분히 뭔가 채워갈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저자를 직접 만난 게 좋았죠(이구동성으로 ‘맞아 그게 젤 좋아!’).” “친구들끼리 ‘어제 TV에서 뭐 봤냐?’라고는 물어도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는 잘 안 묻잖아요. 하지만 여기서는 그게 가능해요. 친구들이랑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경험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요.” “교사들 스스로의 고갈을 풀고 싶었다” 처음 동아리를 주도했던 조성범 교사에게 프로네시스의 결성 경위를 물어보았다. “예전에는 우동욱 선생님하고 저 둘이서 3학년 입시논술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사들도 논술을 가르쳐 보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고, 몇몇 교사들이 저희에게 논술을 배우려던 차였어요. 그때 마침 기회가 와서 교육청에 응모를 했고 첫 해에 우수 동아리로 선정되어 표창도 받았지요.” 조교사와 함께 동아리를 만들었던 우동욱 교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교사와 아이들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지적, 문화적 고갈 등 아이들과의 관계로 해소할 수 없는 부분은 동료 교사들과 함께 풀어가야 합니다. 취미든 공통의 관심사든 같은 지향점을 찾는 동료들이 있어야지요.” 올해 중앙고에 부임한 백은미 교사는 “같은 일상, 비슷한 해가 반복되던 교직생활이 논술동아리로 인해 활력을 얻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동료 교사는 자극제가 되고 연륜 깊은 교사는 스승이 되어준다”고 말했다. 논술교육 또한 현행 입시제도에 복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민이나 갈등은 없었는가 물어보자 조교사는 대답했다. “원래는 삶을 글에 녹여내는 글쓰기 교육을 주로 고민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현실은 대학입시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라 어쩔 수 없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2학년 때는 텍스트를 놓고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독서의 기본에 충실하도록 하고, 3학년은 문제풀이 식의 입시논술을 가르친다. 텍스트를 정할 때도 우리 사회를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신경썼다. 그러다 보니 강신주, 강수돌, 진중권 등 우리 사회 비주류인사의 글도 많이 읽혔다.” “교사동아리는 학교를 어떻게 바꾸는가” 학생들은 이런 교사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수학교사에게 논술 문제를 들고 와서 질문을 해요. 다른 선생님한테 여쭤보라고 하면 ‘선생님 프로네시스잖아요’ 그래요.” “자기가 쓴 글을 봐달라며 들고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어요. 만일 이런 창구가 없었다면 글을 읽고 쓰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자기 자질을 표현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시절을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어떤 변화들이 있을까. “학교는 좁은 사회라서 교사가 조금만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노력을 하더라도 아이들은 금방 반응을 보입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기 성적만 챙기려고 하는 게 요즘 학생들이긴 해요. 하지만 한편으로 시험점수와 상관없이 탐구하는 풍토나 성찰적인 분위기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습니다.” 2학년 논술반을 지도하는 홍범기 교사는 “아이들이 처음엔 정말 저 책을 쓴 저자가 우리 학교에 올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실제로 저자와의 만남이 여러 차례 이루어지면서 학교와 교사에게 믿음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제갈임주 시민기자(imju91@hanmail.net) 2008/10/18 [01:40] ⓒ 과천마을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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