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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人間/쓴 글

재건축이 남긴 사람들

by 제갈임주 2009. 3. 15.
“4년 동안 우리 말 들어준 사람은 처음이에요”
 
 
제갈임주 시민기자
 
말 많고 탈도 많았던 3단지 아파트 재건축이 마무리되었다. 입주도 거의 끝났고, 잡음을 내던 사안도 대부분 정리됐지만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4년 내내 참으로 질기게 투쟁가를 틀고 마이크를 잡았던 사람들, 옛 3단지 상가 세입자들이 그들이다. 시끄러운 노래가 귀에 거슬렸던 탓일까, 자기 이익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 치부했던 탓일까. 그 앞을 지나쳐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치 않은 마음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다루기란 참으로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건의 시시비비를 떠나 한 동네를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그동안 닫아 두었던 귀를 뒤늦게나마 열어 보았다. 
 
▲ 5년째 싸우고 있는 구 3단지 상가 세입자 방00씨와 동료들

♣ 농성을 하신 지 얼마나 됐나요?

2005년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4년 됐나 봐요. 재건축 한다고 나가라는데 권리금도 못 받죠, 가게 시작하면서 물건 채워놓고 인테리어 하느라 진 빚도 있는데 그냥 나오긴 참 막막하더라구요. 주인한테 이주비, 휴업보상비 합쳐 500만원 달라 했더니“거지같은 ×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는 못 준다”하데요. 주인이랑 합의는 안 되고 같은 상가세입자 중에 한 분이 총대를 메셔서 이주비 같이 해결하자고 60점포가 뭉쳤어요. 저희가 옷 같이 맞춰 입고 데모하니까 주인 할머니가 그러데요. 200만원 줄 테니까 그만 나가라고. 처음엔 돈도 싫고 억한 심정에 너도 당해봐라 하는 맘이었지만, 나중엔 그게 조합에서 줄 돈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할머니, 이 돈은 할머니한테 받을 돈이 아니래요. 조합에서 받을 거니까 이젠 신경쓰지 마세요”했어요. 그동안 대부분은 협의해서 보상비 받고 나가고, 지금은 네 사람만 남았네요.
 
♣ 상가 세입자들이 재건축 예정 사실을 모르고 들어올 리가 없다고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잖아요.

처음 가게 시작할 때 재건축 말이 있긴 했지만 워낙 불투명한 상황이었고 부동산에서도 당장 되기는 힘들 거라 했어요.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죠. 아무리 못 해도 한 5년은 장사하겠지 생각하고 들어왔어요. 장사 시작한 지 1년 됐을 때 개발이익환수제 말이 나왔고 그 때부터 재건축도 급하게 진행되더라구요.
 
♣ 답답하고 안타깝게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억지 부리고 떼쓰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 우리도 알아요. 하지만, 우리는 권리를 아무리 주장해도 답을 얻지 못해요. 늘 그런 답답함이 있어요. 이주비도 그래요. 처음엔 주인한테서 받는 줄로만 알았죠. 그런데 싸운 지 3년쯤 됐을까 세입자 보상비로 2천만원씩 준비돼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법정에서 판사가 더 이상 싸우지 말고 타결하자, 준비된 게 있지 않냐고 조합 쪽에 물어보데요. 늘 그런 식이예요. 그런 건 미리 알려주기 전엔 우린 모르거든요. 대화로 풀라 하지만 순진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어요. 묵살당하고 용역에게 협박당하고. 나약하게 보이면 강경조치 하더라구요. 우리가 폭력을 쓰면 얼마나 쓰겠어요. 분한 마음에 욕이나 하고 달려드는 거죠. 그렇게라도 폭력 쓰고 강하게 대응하면 그제서야 대화 한 번 해보재요.
 
♣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과도 관계를 맺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맞아요. 우리는 법도 모르고, 협상도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몰랐어요. 처음엔 법원에서 부르면 “우린 무지하고 변호사 댈 돈도 없으니까 못 갑니다” 그랬어요. 사실 우린 ‘무식해서 모른다, 못 간다, 떼쓴다’밖에 없어요. 법정에 불려나갈 땐 변호사 없이 그냥 가요. 답변서도 우리가 다 쓰구요.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모르면서 그냥 써요. 그러니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죠. 우린 도움을 청할 데가 없잖아요. 그나마 전철연이 저희랑 같은 처지 사람들이 모여 있고 경험도 많이 했으니 의지할 수밖에요. 다른 데 보면 협상 주도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 희생 업고 개인적으로 협상해서 이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어요. 정말 보상비 바라고 한 탕 하려고 비닐하우스 사서 전철연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구요. 그런 사람은 받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못마땅한 거 있지만 어쩌겠어요. 기댈 데가 거기밖에 없는데.
전철연에 내는 한 달 회비가 6천원이예요. 유지 안 되죠. 그러니까 투쟁기금 마련하려고 대학가에서 포장마차 주점도 하고 그래요. 그런 거까지 하다 보니 몸이 말이 아니에요. 눈도 안 보이고, 밤엔 몸이 아파서 잠도 제대로 못 자요. 어떤 사람들은 저희가 일당을 받는대요. “미친×, 빨갱이× 어디서 돈 나오는 데가 있으니까 그 짓거리 하지 어떻게 하겠냐”고. 그렇게 벌어서 쓰는 거지 돈이 어디서 나와. 나도 일당 좀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 당장 생계가 힘드실 텐데 어떻게 꾸려가세요?

전기료 세 달 밀리면 그거부터 내고, 다른 거 밀리면 그 때 해결하고. 한 달에 몇십만원 갖고 쓰는 것 같아요. 남편이 일하는 걸로 사는데 요즘엔 죽도록 일해도 집에는 30만원 가져올까. 젊으니까 저소득층 지원도 못 받아요. 가게 낼 때 물건 들여놓고 손보느라 빚진 게 있었어요. 월세 보증금 몇백짜리 사는 사람이 큰 돈이 어디 있겠어요? 카드대출 받았죠. 경기 어려울 때도 야무지게 해서 수입이 그럭저럭 됐는데. 이제 체계가 서려나 보다 할 때 일이 이렇게 됐어요. 그 때 진 빚이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나고 카드 돌려막기 하는데 더 이상 하면 큰일 나겠구나 싶더라구요. 차라리 펑크내는 게 낫다 생각하고 신용불량이 됐죠. 위기가정이라도 신청할 수 있었지만 데모하면서 차마 우리 집 사정을 그쪽에 내 입으로 말할 수가 없더라구요. 약점이 너무 잡힐 것 같아서요. 언젠가는 너무 힘들어서 시청에 쌀이라도 지원해 달라 하니“우리가 대주는 쌀 먹고 데모 잘 하라고 할 일 있냐”하더라구요.
 
♣ 생계도 문제지만 보이지 않게 더 힘든 일도 많을 텐데요.

우리한테 부과된 벌금만 해도 3천만원이예요. 신용불량자도 됐구요. 전원 집행유예 2년 8개월, 9개월 꼬리표까지 달았어요. 앞으로는 항상 불안하게 살아야 해요. 시장 집 앞에서 1인시위 하는데 그것도 위험해요. 이젠 바로 구속이니까요. 집안은 말이 아니고 특히 애한테는 늘 미안하죠. 남들 하는 거 제대로 못 해주고.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몸은 망가졌고. 이제는 이주비나 가게 투자한 금액을 논할 단계도 지났어요.
조합에선 처음부터 책정했다는 2천만원을 지금도 똑같이 얘기하는데 지난 4년 생각하면 그거 가지고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겠어요. 데모했던 사람은 어디 가서 장사도 못 해요. 2단지 상가 가서 장사를 하겠어요? 대번 ‘노리고 온 사람’이 돼 버려요.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 제일 가슴 아픈 소리가 노리고 들어왔다는 거. 처음부터 알았다면 절대 안 했을 거예요. 너무 힘드니까요.
 
♣ 같은 과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시청 앞에서 매일 스피커 켜놓고 있으니까 중앙동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끼쳤죠. 3단지도 그렇고요. 저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죄송하구요. 하지만, 조금만 세입자 입장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알지도 못하면서 욕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지나가면서 무심코 던지는 말이 정말이지 너무 가슴 아파요.
이렇게 된 데에는 시장도 책임이 있다고 봐요. 왜냐면 인허가는 시에서 내주는 거니까. 중간중간 인허가 내기 전에 세입자 이주대책, 상가 이주대책, 상가 감정평가 제대로 하게 했어야죠. 과천은 재건축이 계속 될 텐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제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합리적인 기준대로 일이 처리되면 이런 일이 없죠.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는 거 같고 대단한 투쟁도 아니지만 이후에 같은 일이 생길 때 다음 사람들에게 작은 영향이라도 줄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알던 사람도 우리 옆을 지날 땐 말없이 외면하고 지나가고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도 너무 반갑고 고마워요.
 
제갈임주 시민기자 (imju91@hanmail.net)
 
 
 
2009/03/12 [18:51] ⓒ 과천마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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