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하는 배움터다. 열악한 상황이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보금자리이자 인큐베이터이다. <오마이뉴스>는 창간 9주년 특별기획의 일환으로 우리 동네를 살찌우는 지역아동센터를,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www.jckh.org)의 도움을 받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www.grassroot.or.kr)과 함께 찾아간다. 작지만 희망을 만드는 풀뿌리들의 이야기를 10여 차례에 걸쳐 소개할 계획이다. <편집자주> |
가장 살기 좋다는 경기도 과천에도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도시 규모가 작아(인구 7만) 저소득 가정 아동들의 절대 수는 적은 편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서울 양천구 목2동의 '나무와 숲'과 같은 지역아동센터가 과천에는 다섯 군데가 있다. 웬만하면 이 다섯 군데에서 방과후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대부분 소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과천은 아동복지법이 규정하는 지역아동센터의 공급이 적정 수준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절박한 지역아동센터도 많은데 왜 하필 과천일까? 그것은 과천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맑은 내 방과후학교'(이하 '맑은 내')의 특성 때문이다. 즉 '맑은 내'는 아이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어른들이 성장해나가는 '어른들의 학교'다.
과천의 '맑은 내'를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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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의 학교인 '맑은 내 방과후 학교' |
ⓒ 박병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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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내'에 나오는 아이들은 전체 25명가량. 이 중에서 하루에 평균 15명의 아이들이 찾는다. 대부분 초등학생들이다. '맑은 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우선으로 받는다. 기초생활수급대상이나 차상위 계층의 아이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맑은 내'에 문을 두드리면 된다.
나머지는 상담을 거치거나 동사무소 추천 등으로 아이들을 받는다. 어찌 보면 인근 안양이나 의왕보다 형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넉넉하게 사는 동네일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적 가난이나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맑은 내'를 지키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특별하게 대하거나 부유층이 누리고 있는 질 높은 교육프로그램에 집중한다는 뜻은 아니다. '맑은 내'는 내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평범한 아이들을 대하는 것처럼, 함께 살아가야 할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공평성'에 가치를 두고 있다.
현재 '맑은 내' 상근 교사는 2명이고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15명 내외다. 아이들 숙제나 공부를 가르쳐주시는 분, 그리고 미술이나 도자기, 합창 등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참여하고 있다.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대부분 무료 교사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맑은 내'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위탁한 '아동복지교사지원센터'에서 조리교사를 파견해주기도 했지만 올해는 조건에 맞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했다.
교사 파견을 위해서는 4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첫째 아이들이 40명을 넘거나, 둘째 중학생이 10명이 넘거나, 셋째 국고 지원을 전혀 받지 않거나, 넷째 농어촌에 설치된 시설일 경우에만 전일제 교사 지원이 가능하다. '맑은 내'는 이 네 가지 조건 중 해당 사항이 하나도 없다.
대부분의 지역아동센터가 시설 운영에 있어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아이들 먹을거리와 관련된 것이다. '맑은 내'의 경우도 초기 몇 년간 자원봉사의 힘으로만 식사를 준비해왔지만, 매번 젊은 엄마들이 이를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동복지교사지원센터'가 파견한 조리교사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이 지원이 끊겼다. '맑은 내'로서는 난감한 일이었지만, 다행히 파견된 조리교사가 적은 인건비만 받고 그 일을 계속해주기로 약속을 했다.
'맑은 내'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료 자원봉사를 하는 마당에 본인만 특별하게 온전한 인건비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리교사 문제는 일종의 딜레마와도 같다. '아동복지교사지원센터'가 파견하는 조리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업으로 조리교사가 채용된다면 아이들은 매우 안정적이고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원봉사자의 참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참여가 줄어든다는 것은 지역사회의 관심이나 인간관계를 더 넓히지 못하는 단점이다. 반면, 자원봉사자만으로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져야 할 경우, 본의 아니게 자원봉사자가 펑크를 낼 수가 있다.
이럴 경우 교사들이 땜질을 해야 하고 식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젊은 자원봉사자 처지에서도 고된 일임에 틀림없다. 동전의 양면을 지닌 조리교사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양천구의 목2동의 '나눔과 숲' 지역아동센터처럼 무료 자원봉사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도 있지만, '맑은 내'처럼 인건비를 지급하며 조리교사를 고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개별 시설의 상황에 맞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먹을거리 문제의 경우 정부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돈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이야기는 먼 옛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식사 한 끼 때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활 가까이에 존재한다. 4대강 정비 사업이나 제2롯데월드 신축 사업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먹을거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교육적 맥락 속에서 다뤄야 할 문제다. 그래서 많은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은 국가의 책임을 더욱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광우병 반대 현수막은 어떻게 나왔나
'맑은 내'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매력 때문에 오랫동안 질긴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일까? 왜 '맑은 내'는 '어른의 학교'일까? 제갈임주씨는 이렇게 말한다.
"일단 아이들을 만나면서 어른들끼리도 만나게 되고 면대면의 시간이 늘어나게 되더라고요. '맑은 내'가 지난 5년 동안 지역사회에 해 온 역할이 있다면,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교량 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교사로서 역할을 하고 음식을 나누고 정을 나눈다.
몇 가지 장면을 보자. 모두들 기억하겠지만 작년 광화문에서 촛불이 한창 타오를 때, 광우병 반대 현수막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맑은 내' 운영위원회에서 나왔다. 그날도 운영위원회가 끝나고 동네 선술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서로 담소를 나누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촛불을 든 청소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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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의미로 과천 지역에 나붙고 있는 현수막 |
ⓒ 서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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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들은 신나게 아이디어를 냈다. 광우병 반대 현수막은 그렇게 탄생했다.
또 하나의 장면. 2004년 여름 어느 날로 기억한다. 과천시청 지하 식당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교실을 준비하겠다던 일군의 사람들이 일일주점을 개최한 적이 있다. 친분이 있던 터라 잠시 찾았더니, 앉을 좌석이 없을 정도로 동네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나중에 들어보니 8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았고, 1천만 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단다.
과천시 인구가 7만인 점을 감안하면 1%가 넘는 사람들이 일일주점에 찾아온 것이다. 혹자는 과천 역사상 가장 성황리에 끝난 일일주점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자원봉사를 자청한 사람들은 모두 밝은 표정들이었다. '맑은 내'를 위한 기금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최근의 장면을 보자. 작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맑은 내' 자원봉사자가 내게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단감 한 박스를 구입하면 '맑은 내'를 후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 박스에 4만원. 그렇게 580여 박스를 팔았다. '맑은 내 방과 후 학교'로 들어온 수입금은 800만 원가량이다.
그리고 얼마 후, 또 하나의 메일이 도착했다. 경북 의성에서 생산된 친환경 사과를 구입해달라는 메일이었다. 1박스에 3만원. 그렇게 350여 박스를 판매했고, '맑은 내'로 후원금이 전달되었다.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여성의 시댁이 감을 재배하고 있었고, 또 한 분의 친가에서는 사과를 재배하고 있었다. 수익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맑은 내'의 재정적 후원을 했던 것이다.
'맑은 내'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고되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치지 않고 그 일들을 해낸다. 당위적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도우려고만 했다면 사람들의 관계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맑은 내'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성장한다. '맑은 내'는 아이들만의 학교가 아니다. 아이들이 만들어준 어른들의 학교다.
안타깝지만 '맑은 내'는 미신고 시설이다. 현행법이 지역아동센터 설치 기준을 근린생활 공간으로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과천시 별양동 주택가에 자리한 '맑은 내'는 주택가에 있기 때문에 허가를 받지 못했다. 상가 밀집 지구보다 주택가가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당연한 상식을 현행법은 외면하고 있다. 법 개정 움직임도 있다고 하니, '맑은 내'가 합법적으로 운영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보건교사 버리고 지역 살림꾼 된 '시냇물'의 꿈
[인터뷰] 제갈임주 '맑은 내 방과 후' 학교 교사 |
※ 제갈임주 씨는 지역사회에서 '시냇물'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다니는 시냇물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는 그만큼 지역 활동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다.
-보건교사 일을 하다가 '맑은 내 방과 후 학교'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곳에 오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간호학을 전공했지만, 마음 속 꿈은 언제나 교사였죠. 그래서 가능하면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자고 생각해서, 졸업하자마자 학교 보건교사로 일하게 됐어요. 의왕에 대안학교 '길'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준비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한 1년 후 정도에 과천 '맑은 내 방과 후 학교'에서 선생님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순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보건교사를 그만두고 2005년부터 '맑은 내 방과 후 학교' 교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맑은 내'에서 4년 간 일했던 것 같아요. "
-지금도 교사의 꿈을 꾸고 계신가요?
"지금은 아니에요(웃음). 보건교사 재직할 때도 교사가 되고 싶어서 방통대 국문학과에 다니기도 했어요. 보건교사라는 직업이 시간을 조금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위치거든요. 그래서 '길'이라는 대안학교도 준비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제가 아이 때문에 잠시 휴직했다가 복직하는 시점에 큰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냈어요. 대안학교 교사와 일반학교 교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시기였어요. 가만히 보니까, 아무래도 일반학교 교사 자리는 재미없겠더라고요(웃음). 그 후에 교사의 꿈은 없어진 거죠."
- 현재 자녀분은 '대안학교'에 다니나요?
"아이가 두 명 있는데, 큰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냈었죠. 물론 지금은 일반학교에 다녀요. 둘째 아이는 처음부터 일반학교에 다녔고요. 첫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마음이 안 변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경험상, 공교육은 외부로부터 자극이 없으면 내부에서 희망을 찾기 힘들겠더라고요. 그래서 '대안학교'가 저희 가족에겐 그야말로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었어요. 그런데 '대안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내부도 상당히 복잡하더라고요(웃음). 아이 처지에서는 장점이 많긴 한데, 안 좋은 점도 있더라고요.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이 다르다는 생각을 아이들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안학교 다니던 큰 아이를 일반학교로 전학시켰어요."
- 제가 궁금한 것은, 왜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가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꿈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제가 예전에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시코(Sicko)>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영화 중간에 캐나다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오거든요. 그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소득이 많은 사람은 보험료도 많이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너무도 태연하고 당연스럽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 가치를 시민들이 정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그런데 한국에선 아직 그런 가치가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 희망이 있다면, 그런 의식들이 보편적인 상식이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죠. 그런 사회를 위해서 지금의 이런 활동도 하는 것이고요."
-'맑은 내' 교사 이외에, 지역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과천에 '마을신문'이라는 지역신문이 있어요. 거기서 간간히 기사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
- 동네에서 하시는 일이 참 많네요. 어떤 활동들을 하시나요? 일은 재미있으시나요?
"'맑은 내'에선 운영위원이면서 간사 일을 하고요, 마을신문에선 기자로 활동하죠. 과천에 '무지개교육마을'이라는 대안학교가 있어요. 거기서 운영감사로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마을신문 일이 재미있어요. 기사 작성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쓰고 나면 나름대로 쾌감이 있죠. 사람들 만나는 게 즐겁기도 하고요. 그런데 주부면서 이런저런 동네일을 하다 보니까 무척 바빠요.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일을 좀 줄여야 할 것 같아요."
- 개인적으로 계획하시고 있는 동네일이 있나요?
"과천에는 자활후견기관이 없거든요. 저소득층에게 자활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일할 수 있는 토대를 지원하고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기관을 만들고 싶어요. 마침 '맑은 내'가 법인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지역아동센터도 더 활성화시키면서 지역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하고 싶어요. 자활후견기관이 그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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