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출처: 부천 콩나물신문협동조합 ☞ http://durl.me/6ryxxj
김영의 기자의 글
하나의 기사를 위해 추운 날 거리에서 70여명의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는 과천마을신문 기자였던 강사분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기에…
내가 잃었던 것은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말하는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마음 담는 일을 중히 여기지 못했던…
이성재 선생님의 글
서점에 가면 서가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있다. 이른바 처세서와 성공담을 담은 경영서적 등이다. 금융위기 이후에 ‘성공’이라는 신화를 찾는 사람들은 처세서가 놓인 서가로 향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유행은 대통령을 뽑는 기준이 되기도 했었다. 도덕성보다는 성공신화가 국민들에게 더 어필이 되었던 것이다.
지역언론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지난 2번의 강의는 바로 이러한 ‘성공신화’에 대한 이야기 였다. 그래서 주최측은(?) 이번 주 강의를 ‘실패담’을 듣는 강의로 배치가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앞의 소개된 두 언론이 아직 살아있는 언론이라면, 이번 주에 소개될 언론은 폐간 된 언론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성공과 실패로 구분 짓기는 모호하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한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흔하게 하는 말로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실패는 성공을 낳을 수 있다는 통찰이다. 반면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 강의를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는 어떤가? 아니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번 주를 포함한 3번의 강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열정’이다. 그리고 ‘욕구’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와 그 욕구를 실현하려는 ‘열정’이 들어있다. 세 언론은 그런 의미에서 시작부터 성공이다. ‘열정’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가장 역동적인 모습이 아니던가? 그런데 차이는 있다. 오늘 강의에서 이야기 될 ‘과천마을신문’은 그 열정이 지속되지 못한 것이다. 다만 희망은 있다. 오늘 강의를 한 제갈임주 기자에게서 아직 활활 불타고 있는 지역언론을 향한 ‘열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그 열정을 들으러 가 보자.
‘과천마을신문의 성공과 실패’라는 주제로 3강이 진행되었다. 강의를 해 주실 분은 이 신문사에게 기자로 활동하셨던 제갈임주 기자. 이름에서 포스가 느껴진다. 가녀린 생김새를 가지고 있으셨지만, 얼굴에서 다부진 느낌을 받는다. 기자의 말씀처럼 사람들은 모이면 ‘뭐 좀 해보자’고 한다는데, 바로 제갈임주 기자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뭔가 좀 해 보자’라고 할 것 같은 인상.
인구 7만, 2만 4천 세대의 행정도시 과천. 청계산과 관악산에 둘러싸여 마치 분치처럼 되어 있는 소도시다. 고대 그리스가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지형을 가졌던 것처럼, 사진을 보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공동체가 가능할 것 같은 도시 풍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운명처럼 이 작은 행정도시에서 시민자치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초반 과천의 시민사회는 지하의 작은 공간에 사는 많은 젊은 세대들을 보며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고 공동육아를 위한 공부방을 만드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6개 월만에 공부방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런 경험은 시민사회 활동에 모멘텀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이후에 과천의 시민사회는 생태와 환경을 위해 녹색가게를 만들고, 체험학습 센터를 만들었으며, 그 이외에 과천 품앗이, 학교평화교육 등에 참여했다고 한다. 또한 공무원 노조나 민주노동당과 연대활동을 전개했다.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과 건강한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함께 활동을 하는 가운데 언론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과천시민들은 우리 한 번 ‘찌라시’를 만들어 볼까? 하며 언론사를 만들 궁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2005년 주민들의 사연과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담아내기 위한 과천마을 신문이 창간하게 된다. 신문의 발단이 ‘찌라시’ 만드는 것이었으니, 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문을 처음 시작할 때는 편집장은 반상근이었고, 약 25명에서 30여명의 기자들은 자원봉사였다고 한다. 신문은 매월 1회 발간을 했으며, 무가지였고, 편집위원회와 운영위원회는 분리해서 운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신문의 내용은 내용이고, 수익은 따로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 창간에 참여한 단체들의 회비를 포함해서 수입은 140만 원, 지출은 160만 원. 고스란히 적자다. 이 적자분은 결국 편집장의 급여에서 삭감했단다. 그런데 열악해 보이는 환경에서 평가할 만한 점들은 많다.
지면의 독립성을 확보하자 하는 뜻에서 편집과 운영을 분리했을 것이고, 자원봉사로 기사를 쓰고 배달을 하고, 배달을 하면서 주민들을 만나겠다는 그 마음. 난 그 마음과 실천에서 열정을 보았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 삶의 질을 함께 높여보자는 공동체성, 우리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열망, 그리고 그런 세상을 위한 자기 헌신. 인류가 살면서 구현하고자 하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삶이 아닌가 말이다.
제갈임주 기자는 아마추어로 봉사활동을 하는 기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신문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답한다. ‘나에겐 신문이란 삶과 나눔의 확장이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말하게 하는 것이고, 관계의 매개라고.’ 이런 인식들이 결국 기사의 질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부하는 기자, 발로 뛰는 기자를 만드는 것이다.
제갈임주 기자는 과천마을신문의 대표적인 기사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사를 뽑는다.
‘주부들이 본 2009년 과천시 예산’(아줌마들 동네 정치에 눈 뜨다.)와
‘동네거리에서 이명박 정권의 1년을 묻다. (대학생, 노숙자, 자영업자 등 70여명에게 물었다고 한다.)
‘교장의 작은 꿈’(교장공모제)
첫 번째 기사는 실제 살림을 담당하는 주부의 시각에서 시예산과 정치를 논했을 것이다. 고스란히 주민의 실질적인 목소리다. 두 번째 기사 역시 중앙정치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을 깨고, 각 분야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지면에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기사는 교장공모제에 대해 배우기 위해 보평초등학교에 가서 교장 공모제와 학교의 변화에 대해서 배우며 쓴 기사라고 한다.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주민들이 주체로 다가서는 순간이다. 이 역시 가장 실질적인 현장의 목소리다. 세 가지 기사 모두 아마추어 기자들이 발로 뛰어 서 나온 프로의 기사들이다. 이외에도 과천마을신문은 여러 가지 생활의제, 시정과 의정감사, 사람들의 이야기와 필요한 정보로 지면을 채워나갔다고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올바른 언론이란 바로 자본을 적절히 견제하면서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신문사는 자본이 없이 운영되기 힘들다. 시작부터 무가지를 선언했던 과천마을신문은 지속적인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재정난은 결국 신문을 폐간하게 되는 주 된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부분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신문사나, 앞으로 발간될 모든 신문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갈임주 기자는 이외에도 정기발행이 잘 되지 못하기 때문에 광고를 안정적으로 받지 못한 점을 실패의 요인으로 꼽는다. 사실 이 역시 재정난으로 인해 일어나는 부수적인 문제이다. 다음으로는 신문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의 의사소통과 신문사를 운영하려는 주체가 감소한 것을 언급한다. 서로 생각이 다를 때, 끝까지 토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문제로 인해 갈등을 매듭짓지 않고 넘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신문에 대한 주체성을 상실하게 했다고 한다. 강의 후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의하면 신문에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실어야 한다는 입장과 신문이면 신문답게 전문적인 내용을 실어야 한다는 입장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끝내 이러한 논쟁은 생산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 ‘아빠가 좋냐? 엄마가 좋냐?’는 논쟁이라서 힘들었을 것이라는 수강생의 감정이 있었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간단하지 않은가? 아빠가 없거나 엄마가 없으면 뭔가 부재한 것이다. 가장 현명한 답은 ‘둘 다 좋아’이다.(사실 우리 딸은 더 현명한 대답을 내 놓았다. ‘아빠는 무슨 이야기가 듣고싶은데?) 우리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로 소식지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전문성을 두루 갖춘 신문. 그게 진짜 신문이다.
과천마을 신문은 많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2010년 7월에 폐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패했는가를 이야기 하기 위해 담쟁이문화원의 지역언론강좌 3강을 맡았다. 실패라고 불려지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는 것은 역시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말했 듯, 과천마을신문은 아직 진행주인 것 같다. 제갈임주 기자는 아직도 마을신문을 꿈꾼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또 누군가 모여서 ‘야, 우리 뭣 좀 해 보자.’ 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자신이 다시 부활하지는 못할지라도 새로운 언론에 산파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과천마을신문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강좌에 모인 많은 사람들도 이야기 한다.
‘우리 뭐 좀 해 볼까요?’ 그래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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