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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의 눈]무당층, 한 번쯤은 뜨거워질 권리
- 2015-07-13 21:46:50
유승민 파동이 의도하지 않은 효과는 공천이 정치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켰다는 점이다. 폭풍이 지나가자마자 여야 정치권에는 온통 내년 총선 이야기뿐이다. 유승민은 가까운 의원들과 통음하며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자”고 다짐했고, 김무성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비경상도 출신으로 당직을 채우는 데 올인하겠다”고 했다. 유권자가 마냥 어리석지 않다는 걸 아는 당 대표는 낯부끄러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의원들은 자존심을 꺾은 채 대통령의 인기에 기댈 채비를 갖췄다. 당원들도 선거 대형으로 재조직되고 있다. 어제는 공천 개혁의 화두를 선점하기 위해 내년 총선부터 완전국민경선제를 여야가 동시에 실시하자는 영리한 제안까지 던져놓았다. 역시 선거 할 줄 아는 당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계속 오리무중 상태다. 정당의 요체는 누구를 대변해서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인데, 새정치연합은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는 고사하고 대변할 세력조차 딱히 찾지 못하고 있다. ‘문중 정치’라는 비아냥 속에 분당론에 휩싸여 있다. 대책 없이 요행수만 기다리는 모습은 더 이상 보아주기도 힘겨울 정도다. 총선을 앞두고 당을 만들어 성공한 기억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신당론 역시 크게 기대할 게 없다. 선거에 능한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언제까지 헛발질만 할 리가 없을 것이므로 내년 총선에서도 새정치연합의 지리멸렬에 새누리당 의원들만 당선시키는 결과가 나올 게 뻔하다.
유권자들이 기존 정당에 얼마나 넌더리 났는지는 무당층이 30%를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준다. 제1야당의 지지율보다 높고, 나아가 여당까지 위협하는 숫자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 정치적으로 대변되지 못하는 상황은 비극이자 희극이다. 무당층 해소의 책임은 1차적으로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있지만, 이제 무당층 유권자들도 생각을 고쳐볼 필요가 있다. 거대 양당이 싫다면 그나마 지지 의욕을 자극하는 정당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정치를 혐오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요새 ‘규모는 작아도 지향이 확실한 당과 후보를 찾는다’는 유권자를 더러 만나게 된다. 나의 노후와 내 자녀의 실업문제를 앞장서 해결하겠다는 정당을 선택하자는 자각이 확산되고 있다는 반가운 징후다.
그런 후보들이 어디 있느냐고 묻기 전에 주위를 잠깐 둘러보자. 기존 정당이 보듬지 못하는 공간에서 다른 선택지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정의당 대표 경선에 나서 ‘2세대 진보정치’로 바람을 일으킨 조성주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과천에서 생활정치를 실천해온 녹색당 서형원 전 과천시의회 의장은 어떤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과천시장 후보(정의당·녹색당 단일)로 나선 그는 19%의 득표율로 당선자를 위협했다. 10년 넘게 과천에서 꾸준히 풀뿌리민주주의를 실천해온 제갈임주 과천시의원과 마포 성미산 마을 활동을 지원하는 오진아 전 마포구의원 등도 있다. 큰 공약, 빈말에 움직이는 정치에서 생활을 바꾸는 정치로 힘을 옮겨 실을 때가 됐다는 증좌로 볼 수 있다. 지역공동체에 변화를 몰고온 이런 흐름이 총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거대 양당은 내년 총선에서도 정당의 난립이라는 방어 논리로 유권자를 협박할 것이다. 그게 통해서 상당수 무당층은 투표장으로 향하던 발길을 되돌리고, 일부 부동층은 ‘비판적 지지’라는 명분에 굴복해 다시 거대 야당을 찍으면 정치 변화는 기약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여당은 경제살리기와 북한 위협론을 앞세워 다당 구도를 막으려 하겠지만, 지금은 다양성의 시대다. 다양한 색깔의 정당이 경쟁하는 게 아름다운 세상이다. 과거 DJP 연합이나 각종 선거에서 정당들이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을 보면 연정의 여건도 어느 정도 갖춰졌다. 무당층이 찍은 당이 다수당이 되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견고한 양당 구조가 깨지는 것을 보고 싶다. 이 참에 무당층을 양산한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면 두 당의 오만은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선거구 조정에 들어가면 의원 정수와 비례대표 등도 함께 논의하게 된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등 소수의 다양한 목소리를 국회로 보내는 제도의 도입을 성사시켜야 한다. 남은 것은 유권자의 주저없는 행동이다. 그 다음엔 거창한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이기적으로 선택하는 결기가 필요하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쉽지 않다. 그래도 무당층 유권자는 자문해볼 일이다. 한번이라도 ‘내 정치’에 가슴이 뜨거워본 적이 있느냐고. 그 정치가 아무려면 문중정치나 패거리정치보다 못할까 하는 심정으로. 내년 총선을 기다릴 마음이 조금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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